며칠 전 큰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3월초 단 이틀간 학부모위원 입후보를 받고 총회 날 학부모위원 선거를 한다고 해 학교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학교장이 주요 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합격시킬 자신이 있다며 학부모들의 성원을 부탁하는 요지의 인사말을 했다.

다음엔 부장교사가 나와 올해 대학입시 경향을 얘기하고 주말에도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 공부시켜야 한다고 하더니 마지막으로 학부모들에게 손을 들고 “나는 내년에 대학생 학부모가 될 수 있다”라고 외치게 했다.

학부모들은 각반 교실로 흩어져서 학부모위원 선출을 위한 학급 대의원 5명을 뽑고 대의원들은 다시 강당으로 모였다. 입후보 상황에서 학년별 두 명의 학교운영위원 6명 중 두 개 학년은 무투표 당선, 한 학년만 투표를 진행했고 후보자의 소견 발표는 2, 3분을 넘지 않았고 투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해마다 3월이면 학교마다 학부모 대표와 교사 대표, 지역위원을 뽑아 학교운영위원을 구성한다. 그러나 최근 한 국회의원의 발표에서도 보듯 전국 초·중·고 514개 학교의 2004, 2005년 학교운영위원회 중 대다수가 학부모위원을 무투표로 선출한다. 학생 수가 많아 학부모 대의원을 뽑아 간접선거로 진행한 경우는 6.6%, 학부모들이 직접선거로 뽑은 경우는 16.9%에 불과했다.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학부모 위원 선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올해로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되어 11년째를 맞이하고 있으나 이 자료에 따르면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소통구조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가 여전한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 구성원들의 대표들로만 학교운영위원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학부모회는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 위원들이 학부모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출발하면서부터 학부모회가 사라졌기 때문에 학교마다 자생 단체가 구성됐고 자생 단체 임원들과 학부모 위원 간의 갈등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교사 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는 기구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학부모회, 교사회, 학생회의 법제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장으로 자리잡아야 학부모나 교사,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학교 공간에서 나눌 수 있다. 지금처럼 대표성을 띤 몇몇 사람들이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을 의논하고 학생들은 공부만 해야 한다며 학생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한다면 학교운영위원회는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표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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