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성매매특별법 제정에 공헌한 조영숙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소장이다.>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국회의원 대부분이 인성과 자질을 들어 최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최 의원은 다음과 같은 변명을 내놓았다.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인 줄 알고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 미안하다”고 말이다.

뒤이어 한나라당의 정의화 의원은 “최 의원은 후진적인 술 문화의 희생양일 뿐 훌륭한 사람이라며 여론재판에 밀려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취중 성추행은 이해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며 최 의원을 옹호했다. 열린우리당의 한광원 의원 역시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군가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라는 등의 글을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렸다.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에서 법과 제도를 일차적으로 심사하고 법안의 통과를 결정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한 최 의원의 발언은 한국 사회의 여성인권의식이 여성인권 관련 법률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 명의 국회의원의 발언은 성폭력을 행한 남성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발언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최 의원처럼 추행을 해도 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정 의원처럼 부적절한 술자리 문화를 당연시 여기면서 성폭력조차 용서되어야 한다는 일방적 관용을 주장한다. 물론 한 의원처럼 남성들의 욕구는 섭리로 여기면서 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80년대 이후 여성단체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그리고 성매매방지법이라는 ‘여성인권 3법’을 제정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치마를 짧게 입거나, 화장이 진하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오히려 성폭력을 유발 또는 유인하는 것이 아니냐?” “가정폭력은 집안 일이다. 그리고 아내를 강간한다는 것이 성립될 수 있느냐?” “남성의 욕구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성을 파는 여성들이 있으니 남성들이 사는 것 아니냐?”라는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성인권을 보호하려는 법과 제도의 마련은 여성인권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통한 의식과 관행의 변화를 당연히 보장해 주지 않으며, 그로 인한 법과 인식상의 괴리, 그리고 제도의 마련과 제도의 이행상의 괴리로 인한 어려움에서 우리 사회는 오늘도 폭력의 피해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여전히 ‘성폭력을 유발하는’ 또는 ‘성폭력을 당해도 괜찮은’ 나아가 ‘성폭력의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런 환상이 ‘배우자 강간’의 불인정과 ‘성매매의 합법화’를 통한 공식적·비공식적 공간에서의 남성의 성적 욕망의 일방적 실현을 보장받으려는 사회제도의 유지를 위한 공모에 너도나도 나서게 할뿐 아니라 위의 세 의원들의 끈끈한(?) 동지애에서처럼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2004년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성폭력과 가정폭력, 그리고 성매매 3가지 모두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왔다. 그런데 법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고 이행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러한 여성인권 3법인 듯하다. 왜냐하면 여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기소율이 2%도 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함께 폭력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폭력을 행한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과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최 의원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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