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과학기술인 19명 모두 남성

2003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인물은 19명이지만, 이중 여성 과학기술인은 전무한 상황이다.

명예의 전당 헌정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과학기술인 ‘김점동’(박에스더·의사·1877∼1910)이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NIS-WIST)에 의해 추천됐지만 지난달 최종 확정 결과 탈락됐다.

여성 과학기술계와 명예의 전당 헌정사업 관계자들은 김점동이 헌정되지 못한 이유를 전당 헌정사업 예산과 헌정 대상자의 증거자료 부족을 들고 있다.

과학기술부 과학기술문화과 관계자는 “매년 1억여 원의 예산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헌정 대상자의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공간과 물품을 마련하기 위해선 2∼3명을 추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성 과학기술계는 우리나라 초기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업적을 뒷받침할 자료 발굴에 어려움이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여성 과학기술계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 제외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현숙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은 “학생들이 여성 과학자를 선뜻 꼽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당에 헌정된다면 젊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귀감이 될 것”이라며 “김점동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면 충분히 헌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점동은 1900년 5월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후 이화여대 부속병원의 전신인 ‘보구여관’의 의사로 활동했다. 그는 황해도 일대를 순회하며 무료 진료 활동을 펼쳤고, 맹아학교와 간호학교 설립에 크게 기여해 고종으로부터 은장(銀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셔우드 홀에 의해 국내 최초로 폐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 실이 만들어진 이유도 김점동이 34세 젊은 나이에 이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전공 여성 박사 김삼순(1909∼2001)도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 인물로 꼽힌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응용균학 분야를 이끌었던 그는 72년 한국균학회를 창립해 4년간 회장으로 활동했고, 90년엔 국내 자생버섯 700여 종 가운데 300여 종을 수록한 ‘한국산 버섯도감’을 발간했다. 한국균학회는 그의 아호를 따 ‘성지(聲至)학술상’을 제정하고 91년부터 시상하고 있다.

김희진 NIS-WIST 정책개발 및 조사연구팀장은 “김점동의 업적 증거자료로 편지와 서적 등을 제출했으나 심사과정에서 유물 등 추가 자료를 요구받고 보완하기도 했다”며 자료 수집의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자료를 보완해 과학기술 선현 부문에 김점동을 다시 한번 추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물선정위원회 간사인 이현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학문 업적도 중요하지만 최근 선정된 장기려 박사처럼 의술봉사활동을 펴 사회에 기여한 인물도 헌정 대상이 된다”며 “국민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여성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인식을 새롭게 하는 홍보활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사업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정근모) 주관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국립서울과학관 4층에 헌정자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명예의 전당은 인터넷(kast.or.kr/HALL)으로도 접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