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초등학교부터 ‘마담 퀴리’ 꿈 키우려면(하)

여학생 과학교육 발전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

‘초등학교부터 마담 퀴리 꿈 키우려면’의 마지막 순서로 교육 관련 전문가들을 초대해 여학생의 과학교육 현황과 여학생들이 과학과 친숙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에선 여학생 특성에 맞는 교재·교수법, 멘토링 및 역할모델 제시, 진로 지도 등이 논의됐다.

●일시·장소   1월 23일 오후 1시 30분 · 여성신문사 회의실

●참석자

김지현 동국대 공과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임  혁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

 (서울사대부설여중 교사)

최보영 교육인적자원부 여성교육정책과 사무관

최미숙 학부모

진행자:여학생들이 수학, 과학 과목에 취약하다는 인식들이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임혁(이하 임):수업할 때 여학생은 조용하고 반응이 없다. 반면 남학생들은 질문이 많고 딴청을 피우기도 하지만 성적은 오히려 좋다. 여학생의 경우엔 특히 물리를 힘들어하고 생물, 화학을 전공으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최미숙(이하 최미):고2 딸은 수학·과학에 의욕이 강하지만 딸 친구 대부분은 문과를 선택했다. 장래 희망보다는 단지 수학, 과학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보영(이하 최보):초등학교 때는 별 차이가 없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여학생의 수학·과학의 학습력이 떨어진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친숙해지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지현(이하 김):수업 시 여학생은 듣는 입장, 남학생은 토론하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소극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것은 학습 스타일일 뿐이지 우열을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학력을 보인 여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받는 평가도 문제다. 사회에선 여성들이 소극적이며, 발표력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남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조직에 적응할 기회가 있는 반면 여학생은 훈련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데 원인이 있다. 가정에서부터 딸을 ‘공주 대접하는 분위기’를 자제해야 한다.

임:학교나 가정에서의 진로 지도에도 문제가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여학생이 공대를 지원할 경우 담임 교사가 만류하는 경우가 있었다. 여학생이란 이유로 과학고에 불합격한 경우가 있는 등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이 사전 봉쇄된 경우가 많았다. 스웨덴처럼 역할모델을 제시해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을 유도하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역할모델로 제시할 인물이 적은 게 사실이다.

최미:탐구활동과 호기심을 갖게 해 주는 놀이행동부터 차별이 있다. 딸에겐 인형과 같은 완성된 놀잇감이 주어지고 아들에겐 행동을 보여야 반응이 오는 조립물이라든지 블록과 같은 장난감이 주어진다. 부모의 기대 차도 있다. 딸이 수학, 과학을 어려워하면 다른 분야로 개발시켜주려 하지만 아들에겐 ‘좋은 대학, 직장’을 빌미로 다그치게 된다.

사회 기여도를 명확히 제시해야

진행자:여학생들이 수학, 과학과 친밀해지기 위한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임:진로 고민은 중2 무렵 하게 되는데 이 때의 과학 교육이나 진로 지도는 늦은 감이 있다. 부모의 기대와 태도에 따라 진로가 달라지므로 어릴 때부터 과학 친화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최보:남녀 간 학력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 수준에 머무는 것은 여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수업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은 또 과학 과목이 장래 직업에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망한 분야에 대한 진로 지도를 도입해야 한다.

김:여학생들의 경우 의대 진학이 많은데 안정적인 전문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가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공헌한다는 인식이 큰 동기유발이 된다. 따라서 ‘산간 벽지에 전기 설치하기’처럼 실험이나 프로젝트 결과가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최미:여학생들은 어려워도 끝까지 매달리는 것 같다. 통계가 어렵지만 왜 중요하고 실제 어떻게 활용되는지 제시해주면 자극이 돼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임:똑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실생활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해 주었을 때 더욱 흥미있어한다. 농구공을 던질 때라든가 야구배트를 휘두를 때와 같은 남학생 위주의 사례 제시는 지양돼야 한다.

김:실험을 하다보면 남학생은 발표를 맡고 여학생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남녀 간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여학생들끼리 팀을 구성하거나 여학생이 발표를 하도록 하는 유도가 필요하다. 여학생들은 또 관계에 민감하기 때문에 선배와의 멘토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임:여중·여고생이 여대학원생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역할모델 제시라는 측면에서 성과가 있다. 대학원생들 역시 학생 입장이기 때문에 진로 선택을 앞둔 중고생들에게 실제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최미:황우석 박사가 한창 공론화될 때 아이들이 수의과로 몰렸고, 삼순이 열풍이 일 때는 파티시에에 몰렸다. 이공계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여성들을 찾아내 매스컴을 통해 알려야 한다. 멘토와 인터넷에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공간도 필요하다.

임:사이버상의 멘토링은 활성화되기 힘든 면이 있다. YMCA와 산업기술재단이 펼친 ‘산업기술체험캠프’처럼 직접 만나 대화하고 현장 방문을 통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인터넷과 연계한 멘토링이 필요하다.

양성평등한 교수법 확산 위해 인센티브 필요

진행자:여학생을 이공계로 진출시키기 위한 정책 차원의 노력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최보:교육부에선 여학생 친화적 과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와이즈(WISE)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여교수들이 부족해 진로 상담이 어려운 상황에서 역할모델을 제시하고, 멘토링을 통해 비전통적 영역으로 진출하는 압박감과 상실감을 덜어주고 있다.

김:교사 혹은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남녀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양성평등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양성평등한 교수법이 보급돼야 하며, 표준화된 강의교재·자료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

임:중·고등학교 교재를 개발하고 시범교육을 실시했다. 또 지난 5년 동안 중·고교 교사 200여 명을 대상으로 연수를 갖기도 했다. 교육부에선 시·도 교육청별 15시간씩 연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여교사조차 여학생 친화적 교육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배운 대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연수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홍보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자유로이 실험할 수 있는 공간 필요

진행자:이공계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 확대가 이를 개선할 수 있는지.

최보:여성인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 분야는 인력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여성에겐 블루오션과 같은 분야다. 인문사회는 이미 레드오션이므로 기회가 많은 과학기술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김:앞으로는 과학과 지식, 기술이 나라발전, 경제발전의 근본이 될 것이다. 그것을 창조할 수 있는 이공계 인력 확보가 어려운 가운데 미활용되고 있는 우수한 여성인력을 발굴해야 한다.

임:과학에 재능 있는 여학생들이 있지만 소수자의 입장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최미:남녀를 떠나 재능 있는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권 차원에서라도 보장해야 한다.

진행자:여학생들을 위한 과학 교육에 대한 조언이나 개선 사항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임: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이 당장 성과를 보이진 않더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최미:마을마다 도서관을 짓듯 미니 과학관을 지어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야 한다. 과학관의 실험교실 강사로 과학을 전공한 주부나 퇴직 교사를 채용한다면 과학문화 확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금융공학, 인체 공학적 가구 디자인 등 과학을 바탕으로 학문 간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소개도 필요하다.

김:할당제 등 여성에 대한 지원정책이 제시될 때마다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대두된다. 이는 수준별 수업과 같은 다양성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미 진출한 여성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야 역차별이란 불만이 잠잠해질 것이다.

최미:경력이 단절된 주부의 경우 재취업이 어렵다. 딸은 수학을 전공한 엄마가 전업주부로 있는 것을 보며 ‘공부 열심히 해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임:아버지의 영향도 크다. 아버지가 보수적이고 엄한 성향을 보일수록 딸들이 과학에 친숙하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