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코피 나요.” 휴대전화로 들려오는 6학년 아들의 목소리. 걱정스럽기보다 뭔가 기대에 찬 듯한 목소리였다.
“많이 나니?”
“아니오.”
“그럼 솜으로 막고 누워 있어.”
 난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엄마 나 코 후벼 판 거 아니에요.”
“누가 그랬대?”
“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무튼 나 코피 흘렸어요. 그럼 됐지요? 엄마가 코피 터지게 공부 하랬잖아요…”
할 말을 잃었다. 피식 웃음도 나왔다. 지난 학년 말 나는 학교 시험에 별 관심이 없는 아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라 했더니 아들은 어느 정도 해야 최선을 다한 것이냐고 물었었다. 난 뭘 하든 코피 터질 정도는 해야지라고 대답을 했었다. 정말 우연히 시험 공부를 할 때 코피가 났고 아들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자기가 코를 후빈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내가 그 정도로 아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런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면 코피 터지도록 노력하라는 말이 아주 강하게 머리에 박힌 모양이다.
나는 ‘사지선다’니 ‘오지선다’니 하는 학교의 객관식 시험에 별 가치를 두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 놀고 운동과 악기를 배우고 독서 습관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둘째인 아들은 시험을 봐도 성적에는 관심이 없고 100점을 맞은 친구의 점수를 마치 자기 점수인 것처럼 자랑하는 아이가 되어갔고 끈기 있게 공부하는 습관을 갖지 못했다. 더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자기 앞에 주어진 힘든 일들을 악착같이 해내는 경험을 갖지 못한 아이로 크고 있었다.
난 학생들이 시험의 성격이 어떠하건 시험을 앞두고 밤잠을 설쳐가며 노력을 해 본다는 것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코피 터질 만큼 시험 준비를 해 봤다는 경험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뭘 하든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리만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아들의 말이 “엄마, 드디어 코피 흘렸어요”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를 돌이켜보니 부끄럽다.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대충 빨리 하려고 했고, 그것도 힘들어지면 포기도 여러 번 했다. ‘해리포터’를 꼭 한번 읽어보라고 딸아이가 간곡히 부탁했지만 읽다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던져 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컴퓨터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 불러서 해결하게 하고 난 바쁘다고 말했다.
내가 더 바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배우는 자세를 어느새 잃어버리고 그 부족함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며 채우려 한 것은 아닐까?
내가 하기도 힘든 일들을 너무 쉽게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것 같다. 좋은 부모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2006년도 새해에는 다시 새롭게 다짐해 본다. 잔소리를 줄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코피 터지게 노력해 보겠다고. 그러면 적어도 우리 아들이 코를 파서 코피를 흘리는 일은 안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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