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공계 여학생을 위한 멘토링

포항공대 2006학년도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한 쌍둥이 자매 박현진·희진(18·한국과학영재고) 양은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에서 주관한 ‘여고생물리캠프’ 참가 경험이 진로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직접 연구실을 탐방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들은 막연했던 전공을 구체화하고 미리 현장 분위기를 익힐 수 있었던 것.

이처럼 남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과학기술계에서 여학생들의 이공계 분야 진출을 돕고, 미래의 여성 리더를 키우기 위한 멘토링 사업이 활발하다. 멘토란 ‘경험 있고 믿을 수 있는 조언자’를 말한다. 멘토링은 ‘멘토’가 후배 ‘멘티’에게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나눠주고 조언하며 유기적 관계를 맺는 프로그램이다. 과학기술계에 관심 있는 여학생들은 여성 과학기술인을 역할 모델로 설정해 그들의 전문 지식을 접하고 전공 선택, 더 나아가 직업 선택 시 도움을 받게 된다. 멘토링은 특히 멘토와 멘티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를 교류하며 인맥, 학연, 편견 등 남성 문화의 장벽을 타파하는 기대 효과가 있다.

우수 여학생들을 차세대 과학기술 인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2001년 발족된 ‘와이즈(WISE:Woma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센터’는 초·중·고 여학생들이 이공계로 진출하도록 유도하는 멘토링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거점센터를 포함, 전국 10곳의 와이즈센터(www.wise.or.kr)에서 여대생 2∼3명과 여성 과학기술인이 연결돼 온·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갖고 있다. 현재 중학생 이상 멘티 1185명과 대학교수·연구소·기업체 소속 멘토 298명이 활동 중이다.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www.witeck.or.kr)의 ‘WATCH21 (Women's Academy for Technology CHanger in the 21st century)’은 여성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사업으로 2004년 시작됐다. 대학원생을 총괄책임자로 해 대학생 2명, 여고생 4명, 지도 교수와 교사 등 6명이 한 팀을 이뤄 기술·공학에 관련된 연구 주제를 여름방학과 이후 3개월간의 주말 학습기간 중 대학 실험실을 이용해 수행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50팀이 참가해 팀당 450만 원의 연구지원비가 제공됐으며, 올해에는 70팀에 800만 원씩 지원될 예정이다.

과학기술계 중 특히 물리 분야에서 여성 비율이 극히 낮은 가운데 2002년 시작된 한국물리학회(www.kps.or.kr) 여성위원회의 ‘여고생물리캠프’는 비슷한 관심 분야를 가진 여학생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여고생 2∼4명이 한 팀을 이뤄 대학교나 연구소의 물리학 연구실을 탐방, 담당 교수나 대학원생의 지도 아래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직접 수행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외에 청소년들의 이공계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 등 5개 대학에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고등학생 초청 캠퍼스 투어’ ‘고등학교 선생님 초청 설명회’ ‘고등학교 방문 설명회’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충주대, 순천대, 충북대, 전북대 등 지방 대학들도 ‘지역과학기술진흥센터’를 설치, 도시별로 설치된 ‘생활과학교실’의 운영 책임을 맡아 우수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다.

반면 온라인을 통한 멘토링의 경우 멘티에 대한 심도 있는 진로 지도가 미흡하고, 활동 가이드가 명확지 않아 멘토·멘티 관계가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또 멘토링 사업 예산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온라인 멘토링에 참여한 한 멘티는 “멘토에게 연락하기 쑥스러워서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못했고, 관계가 소원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교류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박영아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장은 “회비와 기업체의 지원비로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론 정부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최순자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은 “학부모의 이해 부족과 과학기술계를 접할 기회가 없는 여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며 “학생들은 전공 지식 외에 팀워크나 연구 과정 중 만나게 되는 난관을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형원 인제대 컴퓨터응용과학부 교수는 “여고생물리캠프나 WATCH21에 참여한 학생들의 이공계 진출 유도를 위해 지도 교수의 실험실로 진학을 결정한 경우 입시에서 가산점과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료제공: 와이즈센터,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이공계 여성 멘토·멘티의 만남
멘토 김혜경(왼쪽)씨와 멘티 이지선씨. <정대웅 기자 asrai@>

“인내·자신감 갖고 도전을”

“선배의 경험이 큰 자양분”

 졸업을 앞둔 이화여대 화학과 이지선(23)씨가 김혜경(35) 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영업부 차장을 만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선배의 경험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지선씨는 “화학 성적이 좋아서 전공을 선택했지만 사전에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정보를 몰랐고, 명확한 취업 계획을 세우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인하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생물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김혜경 차장 역시 “과학이 좋아서 선택한 전공이지만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 때엔 연구나 교수직이 유일한 역할 모델로 비치지만 나처럼 이공계 기초 학문을 바탕으로 생명공학 분야의 분석장비 마케팅 업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공계 출신인 멘토가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보니 마음먹기에 따라 진출 분야가 다양해질 수 있어 용기가 난다”면서 김 차장에게 “곧 있을 기업체 인턴 생활에서 막연히 남보다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며 조언을 구했다.

김 차장은 “학벌이나 학점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채용 과정을 거쳐 입사하게 되면 똑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망설이지 말고 정중하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한다면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인내와 자신감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실전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먼 곳의 큰 기회만을 노리지 말고 가까이 있는 기회를 잡아 잘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씨는 “멘토의 사무실 분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됐다”고 밝혔고, 김 차장 역시 “선배로서 경험담을 들려줄 수 있어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과학문화재단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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