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원주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대학 여성학 강의를 힘겹게 마치고 시험감독을 하러 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를 타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과연 나는 한 학기 동안 제대로 가르쳤는가? 남학생이 반수가 넘는 학급에서 우리 학생들이 양성평등의 필요성과 그동안의 여성들의 고통과 운동에 대해 반감 없이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한 학기 내내 내가 강조한 “한국이 국제적으로 존경 받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최소 두 배로 증가되어야 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20% 이상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여성에게 한시적으로 행하여지는 적극적 조치 즉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제, 여성채용 목표제, 승진 목표제 등을 찬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사실상의 평등을 촉진할 목적으로 각국이 채택한 잠정적 특별 조치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고, 각국 정부는 여성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녀의 공동 참여를 통해서만이 세계 여성이 합의한 평등, 평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는 사회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내용에 동의했을까?

이때 한 여성 국회의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사학법은 학생들을 반미·친북적으로 교육시켜 좌파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입니다.”
이런 요지의 말을 수선스레 남기며 선전지를 돌리고 뛰어내리는 여성 의원을 보면서 나는 절망했다.
나는 여기서 개정 사학법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 없다. 다만 여성운동을 하는 동안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각종 시위, 법 제정 운동, 혹은 개정운동 등 여러 경험을 한 바 있고, 운동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다소 극적인 표현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도 도저히 참고 들어 줄 수 없는 악의적·논리적 비약과 사실 왜곡, 이념 갈등의 조장, 선동의 정치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왜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가? 우리 여성들은 왜 그 오랫동안 남성들의 미움을 자청하며 정치적 여성 할당제를 주장해 왔는가? 이제 우리들의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를 해야 할 단계가 온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여성 정치인은 ‘생물학적’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인이다. 한국 사회를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 그리고 자연과 환경을 중시하며 경제를 조화롭게 발전시킬 비전과 의지, 능력을 갖춘 여성이다. 여성문제 해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체화한 여성.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모습에서 이런 노력이 배어 나오는 여성이 우리가 함께 하고 싶은 여성이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여성을 발굴하고 지원해야 할 여성계의 책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인이 정치를 새롭게 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한 사회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여줄 때 여성학 강의가 더욱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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