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우맨

투명인간처럼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주는 주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인간이 되면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인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미난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유자재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투명인간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동물을 표백하고 세척하는 등 일정한 가공을 거친 후 표본을 살리틸산의 메틸에스테르에 담그면 투명물질이 된다. 메틸에스테르는 강력한 빛의 굴절성을 가지는 빛깔이 없는 액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원리가 살아있는 유기체에 적용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우선 살아 있는 생물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투명한 액체로 적신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좀 투명해지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투명하다는 것은 눈의 수정체도 투명하다는 것이다. 눈이 투명하다는 것은 눈의 굴절률이 공기의 굴절률과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눈과 공기의 굴절률이 같다고 하면 빛의 굴절을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이 제거되므로 망막에 상이 맺어지지 않아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아무리 투명인간이 된다고 해도 볼 수 없다면 투명인간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투명인간이 되면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여기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폴 버호벤 감독의 ‘할로우맨(Hollow man)’은 투명인간의 장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과학자 카인은 실험용 고릴라를 사라지게 하는 데 성공하자 자신에게 투명인간 실험을 강행해 투명인간이 된다. 그러나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데 실패하자 그의 몸 속에 숨어 있던 욕망과 과대망상이 분출돼 파멸의 길을 걷는다는 줄거리다. 투명인간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는 영국의 소설가 H G 웰스가 그린 ‘투명인간’의 결론도 비극적이다.
자물쇠가 있으면 열쇠도 있는 법. 즉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게 만드는 ‘투명 과학’도 이와 함께 발전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발명된 적외선탐지기는 인간의 체온이 36.5도로 열, 즉 적외선을 발산하므로 주변 온도와 차이가 나는 것을 근거로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명인간이 등장해 범죄를 계속 일으키면, 그가 출몰할 지역을 미리 예상해 적외선 투시장치나 비가시광선 센서 등의 장비를 설치해 놓으면 된다. 투명인간이 등장해도 말썽을 일으키면 언제든지 발각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투명인간을 주제로 해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드는 데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투명인간은 인간들에게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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