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업에서나 컴퓨터 시스템이 구축되면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는 우리에게서도 이 변화를 말하기가 쉬워졌는데, 컴

퓨터 네트워크에 들어서서 사무실에서나 집에서나 24시간 작업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제법 늘었기 때문이다. 은행과 신문사 그리고 일반

행정의 상당부분은 이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노동의 양상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에는 매우

더딘 이해도를 보이고 있다. 우선 컴퓨터 시스템은 근로자의 일자리

를 없애고 있다.

제철산업에서는 83%이상 노동력을 줄여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

고 은행이나 자동차산업은 60%까지도 축소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

서 끝나지 않은다. 우선은 물러난 사람이 불행해 보이지만 해고되지

않고 살아난 사람도 불행이상으로 고달프다. 24시간 가동되는 시스

템이므로 출근과 퇴근의 구분이 없어진다. 몸은 퇴근 했어도 수시로

책임에 연관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므로 노동시간은 사실상 24시간

체재가 된다.

이 새로운 노동조건이 중요한 관심사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

에서도 90년대 들어서이다. 이제는 노동의 대가를 시간으로 계산해

서는 안되고 작업결과로 계산해야 한다는 논제가 성립됐다. 단순기

능직은 그런대로 시간제가 가능하다. 그대신 점점 더 사람의 작업부

분을 단순화 함으로써 저임금화 하고 있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종에서는 논점이 복잡하다. 집에서 쉬는 시간

에도 실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고 지쳐 쓰러져 자

는 시간도 아이디어를 위한 최소 휴식시간이므로 자는 시간도 임금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정보산업에서는 성

공적으로 성장한 기업 자체가 언제나 최고수준을 유지하지 않으면

어느날 갑자기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 경우 극적인 사례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 윈도98을 곧 시판하기

로 한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최근 미국정부와 20개주에게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법원에 제소됐다. 그동안 컴퓨터의 인터넷 접속은 넷스케

이프사의 인터넷접속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윈도98은

이 프로그램 사용이 필요없는 ‘익스플로러4.0’ 체제를 만들어냈다.

간단한 결론은 졸지에 넷스케이프의 존립여부가 막연해진 것이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넷스케이프를 계속 포함해 팔던가 익스첨管??

따로 팔던가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이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했다. 소비자를 편하게 하는

새 기술과 아이디어를 현 체제유지를 위해 후퇴시키는 것이 정책인

가를 묻겠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과 제품도 24시간 긴장상태를 유

지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성공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노

동만 24시간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도 24시간화하고 있는 셈이

다.

마이크로 칩의 독점적 유지자인 인텔사 앤드류 그로브는 이런 경험

을 일찍이 85년에 했다. 그후로 그로브의 모토는 ‘정신착란증에 걸

린자처럼 초긴장상태로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가 되었

다. 그래서 그의 저서 제목도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이다.

이것이 결코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어디서고 편집광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옛 노동의

조건을 원하고 있다. 참으로 긴장감 마저 없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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