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화의 가교 역할하는 무용가 김리혜씨

“한국 사회는 남성 우위 구조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가부장제 사회인 동시에 여성들의 힘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모계사회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에게 억압받는 상황에서도 여성들만의 의식을 공유하고 문화를 만들어 가는, 여성 스스로 해방된 사회죠. 일본은 구조적으로 평등한 사회지만 여성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사회거든요.”
한국인과 일본인으로서의 삶을 함께 살아온 무용가 김리혜(52)씨가 비교한 한국과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11월 3∼4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전통무용음악극 ‘하얀 도성사’의 주인공인 그는 재일 한국인 2세로 해외 출신 동포 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와 ‘승무’ 이수자로 선정된 인물이다.
20여 년간 일본 교육을 받으며 일본인으로 성장한 그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세 때의 일. “관념적으로만 이해해왔던 조국이 현실로 다가왔던 그 순간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일본 귀국 후 스스로 한국 이름으로 개명하고 교포 학생들의 모임을 찾아 교류를 시작했다. 어릴 때 발레를 했지만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던 그가 한국무용을 처음 만나 ‘춤추고 싶다’는 욕구를 깨닫게 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본격적으로 한국 춤을 배우기 위해 81년 28세 나이에 단신으로 한국에 왔다
“처음엔 1년만 열심히 배우고 돌아갈 생각이었다”는 그를 한국에 영주 귀국시킨 것은 김덕수씨와의 만남이다. 한국에서 김덕수씨에게 장구를 배우고 그의 소개로 이매방 선생 문하에 들어가 춤을 배우던 이듬해 동갑내기 스승과 제자가 결혼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온 지 25년째인 그에게는 일본인의 모습을 부정하고 한국인이 되고자 애썼던 시간들이 있다. 15년 정도를 그렇게 살고 나니 비로소 자신이 보이더란다.
“나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어서 한국에 왔는데 또다시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한국 춤은 예쁘게 추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드러나는 예술이죠. 내 안에 있는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의 모습을 인정하자 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드러나게 됐죠.”
이번에 선보인 공연 ‘하얀 도성사’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뱀으로 변한 여성의 복수담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음악인 ‘사물놀이’와 ‘노’의 권위자 김덕수씨와 센바 기요히코씨의 음악이 그의 춤을 매개로 조화를 이뤘다. 복수로 끝맺는 원작과 달리 김씨는 ‘살풀이’를 통해 여성의 한을 풀어주며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바꿨다.
한국 공연을 마치고 11월 중순에는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기타큐슈 등 4개 도시 순회공연이 예정돼 있다. 무용가, 한·일문화 교류의 코디네이터, 한복모델, 한국무용강사 등 다방면에 걸쳐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의 다음 계획은 책을 내는 것이다. 일본 신문에 연재해온 글을 모은 에세이집 ‘바람의 나라, 바람의 춤’이 이달 중 일본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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