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6월 9일 세비야를 출발, 그라나다를 향했다. 그라나다에는 그 아름답다는 알람브라 궁전이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언니가 20여 년 전 알람브라를 다녀와서 극찬을 하던 곳.
그라나다에 빨리 가고 싶은 욕심에 점심을 못 먹은 우리는 ‘에스타파’라는 작은 산 위 마을로 빠졌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아래로, 위로, 무려 한 시간 헤맨 끝에 찾은 슈퍼마켓에는 신통하게도 우리나라처럼 가늘게 썬 삼겹살이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두 팩이나 사고 말았다.
알람브라 궁전은 문 닫을 시간이 임박해서인지 호젓하게 정원과 궁전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웬만한 아름다움에는 무뎌진 내가 기가 딱 질린다. 사람이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백색의 섬세한 천장과 벽 장식, 조용하고도 심플한 파티오! 알람브라에 홀려 있다가 나온 뒤에도 나는 손과 심장이 벌벌 떨리는 경험을 했다. 미술을 전공한 딸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눈치다. 아름다움을 공유한 모녀는 흥분을 삭이지 못하고 고추장 삼겹살 파티 후 만취했다.
파에야(스페인 해물 볶음밥)의 원산지이며 스페인 제3의 도시라는 발렌시아를 거쳐 바르셀로나의 중심지 카탈리나 광장 근처에 도착한 때는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차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딸은 숙박지를 물색하러 떠났는데…. 어디선가 관광객이 물밀 듯이 광장을 향해 모여들고 날씨는 정말 너무 더워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곧 온다던 딸은 1시간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었다.
그 때 웬 스페인 남자가 차창 밖에서 말을 건다. 의아해 창문을 열려다가 ‘아이코, 스페인에 도둑이 많다던데…’ 하며 정신을 차리는 순간 차 뒷문이 열린다. ‘딸이 왔구나’하고 안도하는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해 뒤돌아보니 어떤 놈이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놓였던 배낭과 딸의 소지품 가방을 잡아챈다. ‘아뿔싸, 저놈들이 바로 2인조 강도구나!’ 느꼈을 땐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를 보고 딸이 오히려 놀랐는데 그래도 잘 곳을 구하지 못한 딸이 또 주차 자리를 옮겨 놓고 떠난 뒤 10분도 안 돼 아까와 똑같은 수법의 또 다른 2인조가 말을 건다.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하랴’ 독하게 마음먹고 차를 옮기는데 심장이 쿵쾅거린다. 숙소를 겨우 구하고 온 딸은 그 손가방 속에 제 아비가 준 비상금 1000달러, 어려서부터 여태껏 모은 목걸이며 장신구, 화장품 전부, 할부금도 못 갚은 새로 산 휴대전화 등이 있었다며 풀이 죽는다. 차라리 내 것을 잃어 버렸으면 미안하지도 않았을 텐데 놀라움 가시지 않은 마음에 미안함까지 더해 참담한 심정이다.

아직 젊은 딸은 경찰서에 신고하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람블라스거리에 있는 경찰서로 가니 그 시간에 도둑맞았다고 와 있는 외국인이 세 팀이다. 이렇게 대낮에 눈 벌겋게 뜨고 강도를 당하고 보니 바르셀로나에 정이 뚝 떨어진다. 그래도 여권과 신용카드 등 중요한 것을 안 잃어버린 것에 위로를 하며 타파 바에 들어가 마음을 가다듬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간다. 그 와중에도 쫓아 나가니 경찰청 앞쯤 되는 광장에서 나체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홀딱 벗은 남녀 50여 명이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도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어느 틈에 희희낙락, 카메라를 연신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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