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플라멩코 등 기원, 안달루시아

스페인 뒷골목은 아득한 과거요, 도시는 현재다.
가장 좋아하는 스페인 영화감독 중 한 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그리는 적과 흙의 판타지 속에서 정신이 혼미한 채로 과거와 현실을 오르락거렸다.
6월 7일 프라도 박물관에서 만난 고야, 벨라스케스, 엘그레코의 그림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이 세 화가의 그림은 다른 미술관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것이기에 더 흥분이 되었다. 루브르, 대영 박물관과 더불어 프라도 박물관이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말이 수긍이 갈 만했다.
마드리드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 의심스러운 사람들, 관광객들이 엉켜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빨리 이 혼돈을 벗어나고 싶었다.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 거리인 톨레도, 언덕 위의 이 도시는 순식간에 우리를 중세로 데려다 주었다. 조금만 잘못 들어가도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작은 골목이 우리를 과거로 유인했고 선물가게에는 중세 무사의 긴 칼과 철갑 옷을 실제로 팔고 있었다. 그곳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발견한 평양서커스단의 공연 포스터는 또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번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가 코레에서 왔다고 하면  꼭 북이냐 남이냐를 되묻는다. 그래서 “너 북쪽에서 온 한국 사람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로 가는 길은 키 작은 노란 해바라기와 올리브나무가 끝없이 이어지는 멀고 먼 길이다. 그래도 고마웠던 것은 스페인에서는 관광지로 통하는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면제된다는 점이다. 투우, 플라멩코, 시에스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을 상징하는 모든 것은 이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달루시아의 대표적인 도시들은 주도인 세비야,  콜도바, 그라나다 등이다.
이 세 도시에서 우리는 구시가지 중심에 숙소를 정했다.
콜도바에서는 거대한 메즈키타(이슬람 사원) 바로 옆에서 묵었다. 호스텔이라도 가격이 비싸 깎아달라고 사정을 하는 참에 기침이 터져 나오니 내가 아픈줄 알고 얼른 10유로를 깎아 준다. 딸은 어디서나 가격 흥정을 하는 날 보고 창피해 죽겠다며 질색을 한다.
콜도바의 메즈키타 안으로 들어가 그 거대한 규모에 한번 놀라고 아직도 그 안에서 아침 미사가 거행되고 있어 또 놀란다. 이슬람 사원의 채색, 건축 장식과 기독교식이 혼재되어 있는 묘한 사원이다. 이후 안달루시아 지방 어딜 가나 이슬람과 기독교는 이렇게 뒤섞여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스페인은 유명한 가톨릭 국가다. 그런데도 이슬람 유적을 그대로 지켜 지금 유럽 제일 가는 관광 대국이 된 것을 보니 우리나라와 비교되어 배가 아프다. 
6월 8일 세비야에 도착한 날 밤, 우리는 거금을 들여 플라멩코를 보러 갔다.
늙은 가수의 애절한 노래로 시작된 이 날 밤의 플라멩코는 여자 무용수의 독무, 남자 무용수, 2인무, 혼성무로 이어져 관객들의 혼을 쏙 빼 놓았다.
난생 처음 플라멩코를 본 딸은 감탄을 연발했고 인간 존재 저 깊숙이 숨겨져 있는 근원적인 감정까지 몸으로 표현하는 한 여자 무용수의 표정과 동작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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