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이 선포된 뒤 대한민국 헌법은 87년 10월까지 모두 9차례 개정됐다. 법 여성 학자들은 남녀의 사회적 지위가 불평등한 현 사회 속에서 ‘실질적 평등’이 구현되려면 법제도가 여성 및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57주년 제헌절을 맞아 본지는 우리나라 헌법에 성 인지 관점을 불어넣는 작업이 실패한 과정과 향후 과제를 지적한 유숙란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 학술연구 교수의 논문 ‘실질적 다수와 성평등 구조 구축과정’을 요약해 소개한다.

성인지 헌법이란 성평등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의 하나임을 밝히고 여성에 관한 모든 차별을 철폐, 이를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할 것을 헌법의 조항으로 보장하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헌법의 성평등 원리에 조화될 수 있게 모든 하위법의 제·개정 및 철폐하는 조치까지를 포함한다. 제헌 헌법이래 9차에 걸쳐 개정된 우리나라의 헌법은 성인지 헌법이 아니다. 80년대 민주화 이후 개정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79년 10·26사태 이후 20여 년 만에 개헌 논의가 재개되었다. 80년 5월 17일 계엄 확대와 정치활동 금지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약 7개월간 민주화로의 전환을 위한 개헌안이 국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정부는 정부대로 그리고 시민 사회 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여성계도 헌법 전문에 성평등 원리를 삽입하고 성평등 조항을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정할 것을 중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제안했다. 당시 국회는 개헌안을 위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권력구조와 기본권 등을 중심으로 개헌 작업을 시작했다.
실질적인 평등권을 규정한 당시 헌법 31조 역시 문제가 되었다. 80년 5월 국회 개헌안에는 여성계의 의견을 수렴해 “혼인과 가족생활의 양성평등의 보장과 혼인과 재산권 또는 가족 생활에 관한 법률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제정되어야 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국회의 개헌안은 80년 5월 17일 헌정 중단이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개헌의 주도권은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 주도로 마련돼 최종 확정된 5공화국 헌법의 조항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로 내용이 국회 주도로 추진되었던 개헌안보다 후퇴했다.
현행 헌법은 5공화국 헌법의 연장선상에서 단지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문구를 추가했고 모성보호 조항을 제2항에 신설했을 뿐이다. 80년과 87년 여성계는 헌법 전문에 “양성이 본질적으로 차별 받지 않는다” 혹은 “4·19의거와 5·18 광주의거 그리고 양성평등을 전제로 한 기회의 균등”등을 명시할 것을 제안한 바 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기본권 조항에서 여성계가 주장한 실질적 평등 조항은 공사 영역,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실질적 평등이었다. 그러나 헌법에 반영된 실질적 평등조항은 여성을 여전히 ‘사적 영역에 국한’하는 성별 분리의 규범이 극복되지 않은 가부장적 헌법이었다.
80년대 두 차례 헌법 개정의 기회가 있었지만 성평등에 관한 여성계의 주장이 최소한으로밖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는 헌법 개정안이 실질적으로 국회 밖의 ‘8인 회담’과 ‘4인 회담’ 등 정당 간의 합의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점,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헌 당시 여성단체의 제도적인 접근 통로로서 실질적인 국가기구가 마련되지 않은 점, 성별 균열이 아직 사회의 두드러진 균열구조로 현재화하지 않은 점  등을 들 수 있다.
87년 헌법 개정 시 성인지 헌법의 법제화는 좌절되었지만, 이후 헌법의 성평등 원리에 입각해 여성발전기본법, 정치관계법, 남녀고용평등법,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 등 다양한 하위법의 제·개정 작업은 활발히 전개되었다. 법제화 과정 뒤에 남은 문제는 법제상 성평등 구조와 실질적인 성평등 구조가 일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보이지 않는 성불평등 구조’는 법제가 규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법제의 제·개정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 법제의 제·개정으로도 없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구조’까지 타파해야 완전한 성평등에 도달하는 것이며, 이 단계가 되어야 진정으로 ‘제도상의 성평등 구조’와 사회의 ‘실질적인 성평등 구조’는 일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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