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학대회서 ‘열린 무용’ 진면목 보여준 안무가 조기숙

“저는 몸이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표현주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기 몸에 맞는 움직임을 찾아내면 거기에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사상이 담기게 된다고 봅니다”
지난 6월 29일 퍼커션과 피아노 연주가 함께 하는 ‘작은 춤판-솔로 센스 I’이라는 공연으로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무용 공연을 했던 조기숙(46)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는 “관객과 소통하는 열린 무용을 지향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지난 4월에도 새로운 발레의 틀을 탐구하는 ‘조기숙 뉴 발레-몸놀이’를 공연했던 조 교수는 “좀 더 밀도 있게 관객에게 다가서려는 생각에서 ‘조기숙 작은 춤판’을 열었다”면서  “앞으로도 새로운 발레 공연을 꾸준히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6월 18일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전야제 공연 안무가로 한층 주목을 받았다. 장애인 무용수와 무용과 학생, 일반인 춤 동호회 회원 등이 참여한 무용극 ‘그녀가 온다’는 70개국에서 온 2000여 명의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여성학대회 주제가 ‘경계를 넘어서 : 동-서/남-북’이었습니다. 전야제 주최 측인 서울시는 부채춤이나 화관무 등 전통무용을 원했지만 대회의 주제를 살리기 위해선 이 공연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했습니다”
주최 측을 설득해가며 어려운 공연을 성공시킨 조 교수는 “이렇게까지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줄은 몰랐다”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그는 이혜경 여성학대회 문화위원장에게서 전야제 공연 안무를 제의 받고 영국 유학 시절 장애인 무용단의 공연을 봤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 공연을 기획했다.
열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조교수는 78년 이화여대 무용학과에 입학해 발레를 전공했다. 80년대 춤패 ‘불림’과 ‘디딤’ 등을 창단하고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민족 춤을 보여 준 대표주자였으며 집회와 시위 현장 등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억압되고 암울했던 현실 속에서 정치가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술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선도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이고 사회를 앞서 나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95년 37세의 늦은 나이에 정치학을 전공한 남편과 4세, 9세의 두 아이를 데리고 영국 유학 길에 올랐다. 영국에서 교수와 학생이 친구처럼 지내면서 함께 연구하고 창작하는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국내 무용계는 아직도 전근대적”이라 단정하는 조 교수는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무용 연구나 안무가 통제돼 있는 폐쇄적인 구조”라고 비판했다. 집에 머물며 허드렛일을 하고 춤을 배우던 예전의 ‘집 제자(견습생)’ 제도가 아직 남아있으며 한 무용단에서 나오게 되면 다른 곳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관습도 존재한다고.
그는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용계지만 소수의 남성 무용가들이 파워를 가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기방춤’과 같은 여성을 유흥의 대상으로 삼는 가부장적 작품이 공연된다”고 현실을 전했다. 또한 “희소성으로 인해 남성 무용가들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출연료도 여성보다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조기숙 교수는 존경하는 무용가로서 영국에 있을 당시 같은 대학에서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무용가인 캐롤 브라운을 들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여성의 시각에서 춤을 즐기는 안무를 주로 해오며 관련 논문도 다수 발표한 캐롤 브라운처럼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무용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현재 9월에 있을 ‘헤이리 마을 축제’에서의 공연을 준비 중이다. 또한 ‘뉴 발레’시리즈의 후속 편으로 발레의 형식미를 강조한 무대를 기획하며 ‘작은 춤판’ 공연은 작은 무대를 찾아다니며 3∼4달에 한번씩 꾸준히 개최하려는 등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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