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학자·미술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자연을 연구하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1647∼1717)은 1699년 50이 넘은 나이에 딸과 함께 남미의 북동해안에 위치한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으로 가 나비의 변태와 곤충을 연구했다. 그는 ‘곤충의 변태’에 대해 획기적인 업적을 이룬 최초의 생태학 연구자이자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독일 마르크화의 500마르크짜리 고액권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당시 자연과학은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오물에서 생겨난 악마의 소산이며, 나비 같은 아름다운 곤충들이 애벌레에서 변태의 과정을 거쳐 생겨나리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런 주장을 잘못 했다가는 신의 세계를 침범했다 하여 마녀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메리안 모녀는 수리남의 다채로운 식물과 곤충에 경탄했으며, 생전 처음 접해보는 열대과일의 맛과 밤마다 벌어지는 귀뚜라미, 매미의 콘서트가 주는 감동에 전율했다. 하지만 모녀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 것은 네덜란드의 설탕 상인들이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노예들을 잔혹하게 다루며 착취하는 일이었다.
메리안은 노예들의 현실을 질타하는 보고서를 쓰는 등 노예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고 수리남의 권력자들과의 갈등 관계를 초래하기도 했다.
말라리아로 쓰러진 메리안은 1701년 암스테르담으로 서둘러 돌아가 자료를 정리하여 1705년에 ‘수리남 곤충의 변태’를 출간했다. 일부 남성 과학자들은 그의 관찰 기록이 거짓이라고 비난했지만, 후일 곤충과 식물의 분류 체계가 확립되면서 메리안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당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등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메리안의 그림을 소장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메리안 사후 200년간 조용히 묻혀 있던 이 책은 1907년 러시아의 문인 나보코프에 의해 발견됐다. 메리안의 그림으로 인해 나비를 향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그는 자신의 작품 ‘롤리타’ 표지에 나비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나비들 중 한 마리는 메리안의 이름을 본뜬 학명 ‘잉아 메리아네(Inga Merianae)’로 명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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