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의 정치 이데아] (끝)

평등의 정치는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느 도시 혹은 지방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여자거나 남자거나, 중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거나 대학을 나왔거나, 수입이 많은 직종에 종사하거나 명예를 최고로 치는 일을 하거나 저소득자이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부자 나라에 살거나 가난한 나라에 살거나 상관없이 모두 개인의 필요와 욕구 그리고 능력에 따라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조건의 차이뿐 아니라 기호와 세계관의 차이도 보호받아야 한다.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거나 농구를 잘하거나 특별히 더 나은 취향이란 없다. 기독교 신자거나 불교 신자거나 자기 집단과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학대할 수 없다.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등 정치적 의견이 다르거나 행동 방식이 다르다고 차별할 수 없다. 군사나 외교문제보다 복지나 문화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생각의 차이와 신념의 다양함에 관한 것일 뿐 차별 받아 마땅한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관련된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이 결정의 절차나 결과에 고려되어 나타날 때 공평하다고 혹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평한 대우란 동일한 기회를 열어 주었다거나 결과를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요구와 필요에 대해 어느 정도의 고려를 하느냐이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힘든 약자를 고려한 복지 정책을 마련하는 것, 분쟁지역의 여성들을 위한 보호 정책을 우선 지원하는 것, 저소득층을 위한 생활보호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것 등은 모두 평등한 자격 요건이라는 기계적인 기준을 떠나 예외적인 필요와 욕구를 인정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평등은 연령, 성, 경제적 능력 등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고려해 남과 비교하여 일정 수준의 삶을 향유하도록 해주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평등은 공평한 게임 문화 속에서 자란다.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누가 물에 빠져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옹졸함이 아니라 함께 물 밖에서 혹은 물 속에서 겨루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내가 조건이 바뀐다면 어떤 결과가 내게 가장 작은 상실을 초래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평등해지는 관계의 시작이다. 근대 정신의 시작에서 신에게 의존하던 인간이 개인 중심적인 세계관에 눈을 뜬 것처럼 새로운 변화와 인식은 언제나 가능하다. 새로워지는 인간 삶의 조건은 새로운 기준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듯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무조건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은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공평하게 다룰 줄 아는 사회가 민주적 사회이다. 평등은 이들 차이로 인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강조하는 것이며 그 권리의 공평한 분배가 평등의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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