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부모 따라 아이들도 가족전시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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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그린 그림을 열심히 설명하는 아들 이현(엄마 무릎 위)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 김동철씨와 엄마 반미령씨. 주작 이미지로 콜라주한 시계를 출품한 딸 예일.

“성역할 구분 없이 가족 개개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든든한 지지자가 되는 게 바로 가족”이라는 열린 사고를 가진 화가 김동철(41)·반미령(41)씨 가족. 김씨 가족은 진흥아트홀에서 5월 5일부터 20일까지 마련한 가족의 달 특별기획전 'Growing Up In Artist Family'에 참가한다. 이들은 각자 그린 자신의 자화상 4점과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 4점을 골라 전시장 한쪽 벽을 꾸미게 된다. 특히 초보 화가인 딸 예일이는 주작현무의 이미지를 시계에 콜라주한 작품을, 아들 이현이는 만화 캐릭터 호빵맨을 그린 그림을 출품한다. 홍익대 서양학과 84학번 동기인 김동철·반미령씨 부부는 92년 결혼해 딸 예일(13)이와 아들 이현(11)이를 낳고 일산에서 '예술가 가족'으로 살고 있다.

전시회를 하면 엄마, 아빠 작품을 팔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우리 식구가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전시회 하는 거 좋아요. 하지만 내 작품은 절대 안 팔 거야. 왜냐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고 난 이 시계 소리 없으면 잠을 못 자거든…”(딸 김예일)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우리 가족이 벽 하나를 꾸며야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하지만 전시 자체가 우리 가족의 역사,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죠”(엄마 반미령)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듯 사회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작업을 하는 게 예술가의 몫이죠”(아빠 김동철)

작은 마당이 딸린 하얀 집. 엄마, 아빠의 아틀리에가 집의 반을 차지하는 집. 13개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고 밝기만한 이 집에는 그림을 그리는 엄마, 아빠와 그들을 쏙 빼닮은 남매가 산다.

41세 동갑내기 화가 부부 김동철, 반미령씨와 꼬마 예술가인 딸 예일이와 아들 이현이가 바로 그 주인공. 그림 그리는 '특별한 부모'를 둔 덕분에 예일이와 이현이는 남다른 재능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림 그리는 게' 곧 '일상'이고 자기 작품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안다. 또 경제관념도 남다르다. '그림이 팔리는 것'은 곧 '엄마, 아빠가 돈을 버는 것'이고 '집안일'은 '개인전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음식솜씨'는 '엄마보다 아빠가 좋다는 것'이 이들 남매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예일이의 꿈은 당연히 '화가'고 촬영 중에도 스케치북 한 장 한 장에 그림을 그려 움직이는 그림을 만드는 걸 보면 이현이의 장래도 그림과 무관하지 않을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이 가족이 특별해 보이는 건 상대방이 무얼 해도 칭찬과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데 비결이 있다.

“가족이라 해도 각자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서로 다른 독립인격체니까 상대방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서로 서로 상대방이 가진 장점에 대해 칭찬해주다 보면 화낼 일이 없어지죠”(반미령)

i“양육·예술 함께하며 행복 추구”

반씨의 '칭찬주의'가 온 가족에 전염돼서일까? 기껏 나오는 흉이 “아내는 연애시절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았다” 정도다. 한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생기는 신경전도 없다. 그저 서로가 분발할 수 있도록 격려할 뿐이다. 아내가 개인전을 준비하면 남편이 집안일도 전담한다. 서로 '화가'의 작업이 얼마나 강도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내 반씨가 집안일을, 남편 김씨가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다.

“주로 아내가 절 감독하는 편이죠. 은근히 얼마나 그렸나, 잘 그리고 있나, 몰래 몰래 체크한다니까요. 그래도 아내만큼 이야기가 통하고 이상향이 같은 (화가로서) 동반자는 없죠”(김동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이들이 쏙 빠졌다.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는 예술가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화제가 '아이들'로 바뀌니 예상 밖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우리도 각자 작업실 쓰며 작품에 매달렸죠. 큰 딸 예일이가 태어나고 우리가 택한 것이 바로 파주행이었어요. 도시에 있던 각자의 작업실을 포기하고 파주 산골에 작업실과 살림집이 딸린 조립식 주택을 지었죠. 그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우리가 택한 최선의 방법이었어요”(반미령)

파주에서 일산으로 이사한 것도 다 아이들을 위해서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들어가고 친구가 필요해졌는데 파주 집은 워낙 숲 속이라 주위에 또래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서 아이들 방과 후 시간을 제가 책임져야 했죠. 그러다 보니 집 안 작업실에 눌러 앉게 됐어요. 이렇게 사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에요. 최선의 길을 가고 있으니까 행복하고요”(김동철)

비록 도심에 살고 있지만 최대한 아이들에게 자연과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게 이 부부의 교육철학. 그래서 그리 크지 않은 집이지만 일부러 창문도 13개나 만들었고 작은 정원을 가꾸고 돌담 대신에 키 작은 나무를 심었다.

“작은 정원이지만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 집 나무 담이 이웃들에게는 작은 숲이 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우리 부부에게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풀과 작은 꽃나무 풍경만큼 훌륭한 오브제, 안식처도 없을 거예요”(반미령)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함, 삭막한 도시 속에 피어난 작은 들꽃 한 포기의 소중함을 가르치며 살아가겠다”는 이들 부부와 “친구들과 다른 특별한 부모를 둔 것이 좋은 점도 있고 싫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좋다”는 남매. 이 가족이 사는 법이 궁금하다면 그들의 아틀리에로, 전시회장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활짝 핀 해바라기를 닮은 환한 웃음으로 방문객을, 관람객을 맞이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한정림 기자ubi@

사진=이기태 기자 lee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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