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이야기
두 여자 이야기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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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란/



여성학자




젊어서 반신불수 된 남편 30년간 수발하면서 온갖 허드렛일로 삼 남매를 키워 온 50대 아내…농사일부터 막노동, 포장마차, 청소 일까지 가리지 않으면서 가족을 부양해 온 그 힘의 근원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짐으로 부과된 가족이었을 것…



요즘 들어 유난히 가족 살인이 눈에 띈다. 가족, 그것은 축복이자 족쇄이며 희망이자 절망이며 사랑의 대상이자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다. 한마디로 가족은 힘이자 짐이다. 가족 살인 사건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 그럴 수가!'와 '그래, 그럴 수도…'로 엇갈리는 이유도 각자의 가족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보험금을 노린 계획살인 같은 거야 누구에게나 지탄받게 마련이지만 소위 동반자살로 호도되는 자녀 살인의 경우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확 나뉜다. 죽으려면 저나 죽지 왜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이느냐는 의견과 아이들의 앞날이 뻔한데 그걸 알고 어떻게 저만 죽느냐는 의견이 팽팽하다.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만약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친구가 자신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데리고 죽겠다고 말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친구 말대로라면 혼자 죽는 부모는 자식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인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 보도된 한 50대 여성에 의한 남편 살인 사건은 대다수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젊어서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30년 동안 수발하면서 온갖 허드렛일로 삼 남매를 키워 온 아내가 남편이 자살을 도와 달라고 하자 목을 졸라 죽였다는 내용이다.



뉴스를 접한 순간 나는 끙 하고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 나이 여자들 살기가 왜 이리 힘든 거야. 바로 전날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본 다큐멘터리 '마마상'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같은 땅에서, 같은 또래로,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나는 상상도 못할 신산스러운 삶을 살아온 두 여성에게 내가 진 빚은 과연 얼마나 될까, 무거운 바위 같은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그렇다면 두 여성도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장난은 그만 두자) 두 여성의 인생은 좀, 아니, 한결 가볍지 않았을까.



평생을 기지촌에서 살아온 마마상에게도 가족은 애초부터 힘이 아니라 짐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채 떠난 미국인 아버지도 그렇고 결국 자신의 병 때문에 딸을 성매매 여성으로 만든 어머니도, 그리고 마마상이 부양해야 했던 이복동생들, 그들이 마마상에게 힘이 된 적이 과연 있었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대단한 미남이라고 마마상은 자랑스러워했다). 만약 이복동생들을 먹여 살릴 의무만 없었더라도 그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났을 거라고 했다. 그나마 하나 낳은 딸을 일찍이 미국으로 입양시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제 병들고 힘없고 돈 없는 노후를 함께 살기로 약속한 친구가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초연하기만 하던 표정이 절망으로 바뀌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짐이 되기만 하는 가족을 잃는 것보다 힘이 되어 주는 '가족 같은' 사람을 잃는 것이 훨씬 더 슬플지도 모른다.



마마상이 앞으로의 생을 무슨 힘으로 버텨낼까 걱정스럽지만 또 워낙 씩씩한 성품이라 안심되는 구석도 있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탁탁 두드리는 마마상의 당당한 몸짓에서 언뜻 싱싱한 생명력이 엿보였다.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뭐.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해? 30년 동안이나 병석에 누운 남편을 수발하다가 졸지에 살인범이 되고 만 이 아내는? 30년이라면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온실 속에서 살아가도 제 풀에 지칠 만한 세월인데 그야말로 인고로 점철된 그 긴 세월을 꿋꿋이 버텨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여성이다. 농사일부터 막노동, 포장마차, 청소 일까지 가리지 않으면서 가족을 부양해 온 그 힘의 근원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짐으로 부과된 가족이었을 거다.



아무리 강한 여성이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그 힘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 그렇게 지쳐 있을 그 순간 남편이 도움을 청했고 아내로선 더 이상 거절할 힘이 없었겠지.



그동안 사회가 이 여성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까지 모른 척 해왔다면 이제부터라도 힘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들 가족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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