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재일조선인 여성의 체험 화법

화내는 것=언어로 자기감정 표현하는 것

공포 긴장 풀고 간단 직설 반복 화법을

"분노는 언제나 약자를 향해 표출돼 왔다. 테러리스트도 못 되는 형편없는 인간들이 여자와 약자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것이야말로 윗사람(강자)에게 거역하지 말라고 가르쳐 온 사회의 말로일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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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육성회사 고카샤(香科舍) 대표이자 인권운동가인 재일 조선인 3세 신숙옥(46)씨가 '화내는 법'(푸른길)을 냈다. 일본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오며 온갖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아왔던 저자는 '화내기'를 약자가 강자에게 할 수 있는 의사 소통의 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매일 매일 화내고 있다"는 저자는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차별의식과 부당한 상황들에 대해 분노한다.

그는 와이드 쇼 프로그램에서 보도되는 남성 탤런트와의 불륜으로 TV를 떠나게 된 여성 아나운서의 은퇴소식을 보면서 "왜 대가를 치르는 쪽은 언제나 여성인가?"라고 분개한다. 긴자에 사무실을 열기로 했을 때는 독신여성이기 때문에, 조선인이기 때문에 사무실을 얻지도 못했다. 융자를 신청하러 은행에 갔을 때는 '여성=사회적 신용 없음'이라는 공식을 알게 됐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월 5000엔의 복사기를 리스(lease)하는 데도 집을 소유한 일본인 2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했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어떤가? 편의점에 강도가 들기만 해도 범인은 외국인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이란 제3세계 국가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 안에는 물론 재일 조선인도 포함된다. 반면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 이름을 영문으로 쓰면 친절하게 서비스하는 일본사회의 양면성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갈수록 흉악해지는 소년범죄에 대해 흥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 저지르는 학대와 범죄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신씨가 말하는 화내는 것이란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내는 것은 인간성의 발로이며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그는 화내는 것과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표현할 언어를 잃었을 때의 상태이며 관계 단절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다.

신씨는 바르게 화내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화내기 전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상황을 관망해 공포심을 없애고 화가 나면 긴장되기 마련이니 되도록 긴장을 풀라고 충고한다. 효과적으로 화내는 기술로 감정을 간단한 말로 표현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직설적으로 표현하라고 제안한다.

또 상대를 직시할 것, 한 번에 한 가지씩 화낼 것, 구체적으로 지적할 것 등 다양한 기술을 소개한다.

언뜻 보면 사회생활 비법서 같은 이 책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으로, 여성으로 일본사회에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신씨가 일생 동안 겪은 차별상황 속에서 느꼈던 분노와 그에 대한 대처법을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가장 최하위 계급이었던 그가 번듯한 중견기업의 대표로, 메이지대학 초빙교수로, 잘나가는 인기강사로, 일본의 권력자들에게 당당하게 항의할 줄 아는 인권운동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화내는 법'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숙옥 지음/서금석 옮김/푸른길/1만원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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