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무용공연 전문기획사 MCT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가 4인을 한 무대에 불러모았다. 국내 무대에서 보기 힘든 안은미를 비롯해 안성수, 전미숙, 홍승엽 등 4명의 무용가가 자신들의 대표작을 재연했다. 이에 대해 원로 시인이자 무용평론가 김영태씨의 리뷰를 싣는다.

안은미, 안성수, 전미숙, 홍승엽 등 무용가 4인4색의 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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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의 '플리즈 터치 미(Please Touch Me)'에는 이정우의 소리와 고지연의 가야금이 어우러져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만들었다.

안은미는 누가 나를 건드리거나 소유해주기를 바란다. '플리즈 터치 미(Please Touch Me)'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번 변신하고 여러 번 갈망하는 과정이 이 춤의 요체이다. 그의 춤에 동행했던 정현진 대신 이정우가 소리를, 고지연이 가야금을 연주한다. 우리나라 춤 무대에서 미술 의상 등 원색을 고집한 게 안은미였다. 원색은 안은미의 퍼포먼스와 더불어 낯설지 않다.

그는 남자의 손길에서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둔다. 의상이 바뀌거나 도주하지도 않는데 그는 늘 혼자이다. 객석을 흘끔 보며 무대 뒤로 사라질 때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 솔로공연에서 '제발'이라는 뜻은 그가 자신의 정체의 자리를 비워놓았지만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는 결과물을 남긴다. 흔히 초보자들은 사랑의 결과물을 제시하는 데 급급해 한다. 전문가와 다른 점이다. 자신의 몸이 유쾌하고 기분이 상승되고 있다는 간접화법 또한 도처에서 보인다. 춤추면서 그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어떤 역경도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들로 드러난다. '무덤' 연작을 비롯해 그의 진행형 춤은 그 가벼운 존재들에 대해 때로는 기합을, 때로는 응석을 떤다. 낯섦을 부정하려는 의식의 충전이 연작으로 드러나는 증거이다.

안성수 춤을 나는 '멈춰있는 숨, 이동하는 숨, 정지와 도발'로 요약했었다. '볼레로' 신작은 무리지어 있는 몸들이 알레그로를 아끼면서 아다지오 베이지색으로 드러나듯 그리고 간헐적으로 라벨의 음악을 삼키고 토하듯 안성수가 '음악의 미식가'임을 강조한다.

안무자의 장기인 그 미묘함의 일탈과 충동은 신작에서 음악에 귀속된 몸 대신 몸이 음악이 되는 새로운 경지에 도전한다. 안성수의 숨은 도화(桃花)를 뱉어내고 끝마무리에서 열린 꽃봉오리들을 닫는다.

전미숙의 인사는 사소한 일상의 허례허식을 꼬집는다. '반갑습니다'가 아닌 '반갑습니까'는 반어이다. '다'와 '까'의 차이는 평범과 의문의 차이이고 그것이 전미숙이 지향하는 춤의 통제이다. 사각 조명 안의 남자는 여러 인물들과 만나고 제자리에 환원된다.

최수진의 인사는 이내 두 사람 뒷선에 방치된다. 이 작은 소품 속에 해학이 들어있다. 내가 예측했던, 예측할 수 없는 '무서움'이다. 평범을 가장한 예리함이 그의 전작들이었듯이.

홍승엽의 '데자뷔'의 하이라이트는 리옹 무대 환성을 떠올리기에 족했다. 건지어 올린 물고기들은 안무자의 끊임없는 탐색이며 메타포이다. 어떤 상 수상 거부에 대한 질타가 그의 탐미적 인체의 드라마를 손상시키지는 못한다. 춤을 건지어 올리는 작살을 홍승엽 만큼 가진 안무가도 드물기에.

김영태/ 시인·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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