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걸 춘향' 등 코믹 드라마 강세…일·사랑에 당당한 여성 어필

패러디·반전·풍자 등 기법은 신선해도 신데렐라 공식은 여전

~b7-1.jpg

코믹하고 발랄한 여주인공들이 드라마를 이끄는 것이 최근 경향이다. 맨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MBC의 '굳세어라 금순아', SBS의 '귀엽거나 미치거나',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KBS의 '쾌걸 춘향'.

“춘향이가 자신만만 내뱉는 '웃기시네'와 몽룡이의 '다 죽었어' 못 듣게 돼서 너무 섭섭해요” 역삼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안세진(15) 양은 “방학이 끝난 것보다 드라마 '쾌걸춘향'이 종영한 게 더 아쉽다”고 푸념했다.

TV가 유쾌해졌다. 하지만 TV 속 여주인공들도 유쾌해졌을까? 분명 그녀들은 자신들의 삶과 사랑 앞에 당당하게 선다. 그러나 종국에는 백마 탄 왕자님에게 망설임 없이 안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가기까지 재치 넘치고 발랄하기까지 한 여주인공이 드라마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3월 1일 시청률 32.2%(TNS미디어코리아 조사결과)로 막을 내린 KBS의 '쾌걸 춘향'(연출 전기상·지병현, 극본 홍미란·홍정은)이 대표적 예다. 고전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비틀고 만화적 재미를 덧붙여 큰 인기를 모았다. 여기에 예고편 대신 고전을 패러디한 에필로그를 삽입해 극의 재미를 더했고 고전과 달리 당당한 춘향이의 모습이 여성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이 작성한 '주간 드라마의 캐릭터 분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KBS '쾌걸 춘향'의 춘향(한채영)이 가장 현대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남자들의 사랑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기 계발적인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서다.

이와 같은 '쾌걸 춘향'의 선전에 힘입어 후속으로 시작한 '열여덟 스물아홉'도 출발이 좋다. '열여덟 스물아홉'(연출 김원용·함영훈, 극본 고봉황·김경희)은 17.4%(TNS미디어 집계)의 시청률을 기록해 같은 시간에 방송된 MBC의'원더풀 라이프'(12.9%)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열여덟 스물아홉' 역시 전작 '쾌걸 춘향'에 이어 코믹장르에 에필로그 기법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아 둔다.

톡톡 튀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유쾌한 내용의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일일연속극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실례로 봄 개편과 함께 '왕꽃선녀님'의 후속으로 시작한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연출 이대영, 극본 이정선)를 꼽을 수 있다. '인어아가씨'나 '왕꽃선녀님' 같은 파격 소재를 주로 차용해온 MBC 일일드라마로서는 큰 변화다. 결혼 3일 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스무 살 금순이가 아이를 낳고 시댁 식구들과 함께 꿋꿋하고 밝게 살아간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알록달록 촌티패션을 하고 시부모 앞에서 “쪽 팔린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집에서 쫓아낸다”고 장난 삼아 협박하는 시어머니에게 “칭찬도 자꾸 들으면 싫다”고 대드는 당돌함마저 귀엽다.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금순이 덕분에 시청률도 올라갔고 급기야는 9시 뉴스 시청률까지 끌어올릴 조짐이다. 일산에 거주하는 주부 이명숙(53)씨는 “기존 일일드라마에는 출생의 비밀, 가족에 대한 복수 등 어두운 내용만 나와 보기 불편했는데 이번 드라마는 어두운 얘기도 밝게 그려 재밌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트콤은 좀 더 색다른 소재를 찾아 장르의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MBC 자체에서 주는 '이 달의 MBC프로그램상'을 수상한 '안녕, 프란체스카'(연출 노도철)가 대표적인 예다. 멸족위기를 맞은 루마니아에서 온 뱀파이어 가족을 서울시내에 등장시킨 이 작품은 현대의 가족 해체 현상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호러 소재와 상황설정을 통해 미묘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면 SBS의 '귀엽거나 미치거나'(연출 김병욱)는 연기자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방법을 택했다. 여우 이미지의 소유진이 무식하고 곰 같은 역할을, 박경림이 세련되고 똑똑한 큐레이터 역을 맡는 식이다. 연출을 맡은 김병욱 PD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극 내용 자체도 뒤집는 방법을 택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나 '파리의 연인'같은 히트작을 패러디 해 인기를 끌며 '시트콤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안방극장이 코믹장르에 점령되는 현상에 대해 김훈순 이화여대 신방과 교수는 “시청자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이는 곧 시청률에 반영되기 때문에 드라마가 코믹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경제 부진, 자살 사건 등 사회 전반이 우울증에 빠졌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라도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한정림 기자ubi@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