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일본 아줌마들은 오랫동안 안정된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삶도 단순하고 따라서 성격도 단순해졌단다…

“그 집의 말런 브랜도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내 친구 하나는 만날 때마다 이렇게 남편의 안부를 묻는다. 십여년 전, 내가 '또하나의 문화' 무크지에 썼던 글을 용케도 잊지 않고 나를 놀려먹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 그 기억력이 대단하다. 나라는 인간은 선천적 부끄러움 결핍증 환자답게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 이야기를 까발리는 데는 상한선이 없었던 지라 연애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가 말런 브랜도를 닮았네, 폴 뉴먼을 닮았네 끌어댔던 게 그 친구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가당치 않았던가 보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콩깍지가 씌었다고 해도 정도 문제이지, 어떻게 그런 착각, 아니 망상을 할 수 있었는지. 눈 코 입 어느 구석 하나 닮은 데가 없는데 억지로 끌어다 붙이자면 그저 담배연기를 내뿜는 모습에서 엿보이는 반항기랄까 외로움이랄까 뭐 그런 게 비슷하다면 비슷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남편을 만난 그 즈음에 나는 말런 브랜도와 폴 뉴먼에게 푹 빠져 살았기 때문에 남자들을 보면 일단 끼워 맞추기를 시도했었나 보다. 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그 때 어떻게 그들에게 빠져들었는지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의아스럽기만 하다.

그 이전에는 또 뜬금없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부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얼마 전 옛날 고등학교 시절의 앨범을 들추다 보니 그 부부의 사진을 신문에서 오려내 정성스럽게 스크랩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영화배우 샌드라 디의 수영복 사진도 있었다. 당시에는 무척 좋아해서 붙였을 텐데 사진 위에 메모가 없었다면 누군지 몰랐을 만큼 기억 속에선 까맣게 지워진 이름이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두 스타가 풍겼던 강렬한 카리스마는 시간과 더불어 옅어져갔고 그들은 더 이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가 아니라 그냥 연기를 잘하는 좋은 배우일 뿐이었다. 나 역시 셋이나 되는 아이들과 씨름하느라고 스타 따위는 먼 세상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분망하던 시절 어떻게 그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딱히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위트니스'라는 영화를 봤고 해리슨 포드라는 배우를 만났다. '스타워즈'에도 나왔다는데 그 땐 별 매력(이런 걸 섹스 어필이라고 한다지, 아마?)이 없더니 갑자기 달라 보였다. 아마도 내가 좀 여유가 생겼었나 보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한동안 내가 좋아했던 그 해리슨 포드도 시간이 흐르니 매력이 급격히 줄어들어 갔다. 그리고 드디어 최근 어떤 미국 잡지는 그를 '가장 섹시한 노인 10인'에서 1위로 뽑았다고 한다. 무정한 세월이여.

그러고 보면 내 취향이 꽃미남이 아닌 건 분명하다. 수많은 또래들이 당대의 미남 알랭 들롱에게 미쳤을 때도 난 별로였으니까. 그러니 이 나이에 하물며 브래드 피트니 디캐프리오처럼 젊은 스타들은 어땠으랴. 누가 들으면 주책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왜 그들이 아들처럼 여겨지는 거지? 그러니 이젠 열렬히 좋아하는 스타 하나도 마음에 품지 못하고 삭막하게 늙어갈 일만 남았다.

일본 여성들, 그 중에서도 나이가 웬만큼 든 아줌마들이 아들 뻘인 배용준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건 신기함과 부러움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바에 따르면 일본의 가부장적 남성에 실망한 여성들이 마음 속 깊이 원하는 부드러운 남성상을 그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남성들은 그보다 낫다는 말인가?

아마 오십보 백보일 텐데. 게다가 드라마를 좋아하기로야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따를 이들이 없을 텐데 그렇다고 좋아하는 탤런트 집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진 않잖아. 딸들이 그런다 해도 못마땅해 할 게 뻔한데.

이른바 욘사마 현상에 대해서 갖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은 따로 있다. 일본에 오래 살았던 어떤 한국 아줌마의 분석인데, 일본 아줌마들은 아주 단순한 삶을 살기 때문이란다.

격랑 속을 헤쳐 온 우리와 달리 오랫동안 안정된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삶도 단순하고 따라서 성격도 단순해졌단다. 그렇기에 단순한 드라마에 감동받기도 쉽고 마음에 드는 스타가 있으면 소녀들과 똑같이 물불 안 가리고 좋아할 수 있단다.

어때요? 그럴 듯 하지 않나요? 우리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오래 살다 보면 아줌마들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겠죠?

(추신: 세상에, 길 가던 아기엄마를 납치해서 엄마는 죽이고 아기는 빼앗다니요! 요즘 이어지는 끔찍한 사건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심란해서 오늘은 그냥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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