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담배협상 등 '두각' 소수자위한 입법활동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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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번째 여성 의원인 서혜석(52)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해 4월 총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비례대표 24번이던 그의 앞 번호에서 당선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많이 아쉬워했지만 그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고 했다. “준비가 덜 돼 있어서 (내게) 기회가 오지 않았나 보다”라고 마음을 정리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그는 같은 당 비례대표였던 박홍수 의원이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됨에 따라 17대 국회 개원 8개월 만에 의원 배지를 달았다. 1년 전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서 의원은 민생경제특별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신용불량자정책 등을 만들었다. 그의 정책은 당이 정한 10대 정책에 포함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

서 의원은 세계적인 미국 로펌 '베이커 앤드 매킨지'에서 활동한 국제 변호사로, 국제 통상 분야에선 꽤 알려진 인사다. 그는 IMF체제 이후 최초로 외자 도입을 주도하면서 정부와 미국 사이의 2차 담배협상 때 정부 협상단의 법률 자문 역할을 했다.

2003년엔 현대중공업 대 두산중공업의 쿠웨이트 입찰 관련 무역 조정을 하면서 국제무역 관련 분야의 법조항이 부실한 것을 깨닫고 관련법의 재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변화무쌍한 국제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법의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 13장에 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때는 제가 국회의원이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국회의원들이 제가 느꼈던 문제점을 감안해 관련법을 고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문의 글을 썼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국회 정무위나 산업자원위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정치는 두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고 고백한 서 의원이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대신 의원직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짧게 말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정치가 투명해지고 바뀌고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제 전문성의 도구는 '협상'입니다. 기업 간 분쟁을 조절하고 타협점을 끌어내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국회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협상가 역할을 맡겠습니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제변호사로 활동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화려함이 느껴지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뒤따랐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30세가 넘어 시작한 미국 로스쿨에서의 법학 공부, 치열한 미국의 직장에서 소수민족의 여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매일 전쟁을 치렀다. “미국에서 살면서 소수자의 감수성을 체득할 수 있었다”는 그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 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입법 활동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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