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정치적 차원에서는 역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높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역사해석을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음은 물론이지만 최근에는 고구려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야욕이 그에 못지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역사를 바로 쓰는 일은 북한과의 평화적 관계 수립을 하는 과정에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과제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고 민족화합이 있을 수 없으며 역사적 진실을 바로 직면하지 않고는 뼈아픈 과거의 악몽에서 놓여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곡보다 무관심이 더 큰 문제

그런데 이상한 일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정치적으로 매우 높은데 비해 역사교육에 대한 교육당국이나 학부모들의 관심은 여전히 높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얼마 만큼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가를 알고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는가. 솔직히 말해 아마 지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 자신조차도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면에서는 자녀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계사는 물론 국사까지도 선택과목이 된 지는 이미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5년에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알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가. 8·15와 6·25라는 날짜를 접할 때 특별한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는가.

전쟁이 북한에 대한 미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다고 믿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 못지않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역사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의식수준이 그처럼 낮다면 일본이나 중국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아무리 외쳐 보았자 무슨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것인가. 역사를 방어하는 일이 몇몇 역사전문가들이나 아니면 정치적 동기에서 움직이는 정객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8·15, 6·25도 '감동'도 빼앗긴 학생들

역사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살아온 길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왜 하나의 민족으로, 하나의 국민으로 뭉쳐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으며 그런 교육은 역사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과정에서는 문화적 뿌리에 대한 인식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해서 민족의식, 국민의식을 고취시키게끔 고안된 역사교육이 실종된 지가 이미 오래다. 역사적 접근양식으로 다뤄져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문지리 등의 독립 과목으로 쪼개져 나간 후 역사란 별 의미도 없는 이름과 연대나 암기시키는 과목 정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교육 당국이 역사교육을 게을리 한 것은 단지 역사라는 과목을 약화시킴으로써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3·1절이나 8·15를 기념하는 의식조차도 학교활동에서 추방해 버렸으니 더 먼 시대의 역사에 대해 지식이나 관심을 못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역사는 민족의 미래요, 희망이다

역사, 서양말로 history, Geschichte란 이야기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의 역사교육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와 다르게, 또는 비슷하게 살아왔는가를 이야기로서 배우는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삶 전반에 대한 기본 상식을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며 국민적 자의식과 더불어 자기와 다른 사람들, 다른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용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배경 없이 좁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 교육이 도구화될 때 역사는 삶을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드는 데 힘이 되기보다는 갈등과 반목의 도구로 전락하고 결국은 물리적 힘이 강한 측의 주장에 따라 왜곡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역사왜곡에 대해 남의 나라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가 서둘러야 할 일이 우리 자식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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