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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 딸과 큰 마트에 쇼핑을 가면 간혹 숨바꼭질을 한답니다.

“엄마 없다!” 소리치고 진열장 뒤로 숨지요.

딸은 방긋방긋 웃으며 저를 찾아냅니다.

작년엔 녀석이 아이용 캐리어를 밀고 저를 따라오면서

저보고 “여보, 같이 가!”라고 외쳐

사람들이 모두 웃은 적이 있습니다.

아빠 없이 둘만 살았는데,

어디서 여보란 말을 배웠는지…

아무튼 희한합니다.

아이랑 다니면 게임처럼 유쾌한 일이 많군요.

-'신현림의 희망 블루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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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개성파 시인 신현림씨는 최근 에세이집 '희망 블루스'를 펴내고 10여년 전 '세기말 블루스'의 냉소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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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오랜만에 '찰칵'. 신현림씨는 딸에게 늘 “너는 '신서윤'이야” 말하곤 한다.

지난해 7월 오랜만에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을 내고 그 속에 이혼 후 여성가장으로서 네 살짜리 딸을 키우는 삶의 보람과 고단함을 녹여냈던 시인 신현림(44)씨. 이 땅에서 그와 같은 조건에서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다잡는 치열한 의지와 끈끈한 인내가 필요한지를 감성적으로 일깨웠다. 그리고 얼마 안돼 9월 말 인사동에서 생애 첫 사진전과 사진산문집을 내더니 지난해 말 드디어 '신현림의 희망 블루스'를 펴냈다. 시인이 예전부터 밑줄 그어 심취했던 아흔 아홉 편의 글귀에 스스로의 단상을 담아낸 것. 96년 시집 '세기말 블루스' 출간 10여년 후 “막 쪄낸 시루떡처럼 달큰한 '미래'를 떠올렸으면”하고 희망하는 시인의 심경 변화엔 과연 어떤 삶의 화학작용이 있었을까.

'세기말 블루스'로 떴고 '희망 블루스'로 훌쩍 성장

“'세기말 블루스'에서 '희망 블루스'로의 터닝 포인트라? 애를 낳은 거죠, 뭐. 나의 삶에만 집중하던 것에서 아이의 삶으로 집중하게 됐고, 희생을 많이 생각하게 됐고, 그리고 풍족해졌죠. 나란 존재는 별 게 아니야라는 생각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많이 생각합니다. '세기말 블루스'로 좋게 말하면 떴죠. 13쇄를 찍었으니 한 2년간은 생활 걱정 없이 창작에만 집중해 '나의 아름다운 창'(영상 에세이)을 썼으니까요. 그러다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먹고사는 일에 지쳐 가는 것 같아 '희망 블루스'를 냈어요. 그리고, 비로소 '중견'이 된 느낌이죠”

말끝마다 터지는 '호구지책'엔삶의 사랑이 철철

그의 삶의 중심 이동을 가능케 한 딸 서윤이는 올해 다섯 살이 되었다. 벌써부터 어린이집 가는 것을 싫어해 글쓰는 숙제(?)에 마음이 바쁜 엄마의 오전 시간을 통째로 차지한다. 딸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그는 근처 아주대 도서관으로 직행해 써둔 청탁원고를 검토해 정리하고, 정신없이 독서에 빠져들며 하루 중 가장 드물지만,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래도 이 단맛은 3시간 이상 지속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딸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밤 9시쯤 귀가하면 온통 가사와 육아에 빠져든다. 조금이라도 글을 쓰다 잠드는 시간은 새벽 2시쯤. 다시 오전 9시 넘어 일어나 같은 리듬으로 생활을 반복해 간다.

딸과 함께 싱글맘 가족고단해도 행복해

이런 그에게 요즘 또 하나의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그가 서슴없이 '천사'라 부르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여동생이 그와 딸 곁을 조만간 떠날 예정이다. 가정생활을 학업과 병행하면서도 친정식구들을 일일이 챙기고, 언니네 밑반찬과 여름김치,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다 해주던 동생이다. “과연 저 동생이 없었으면 내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는 그는 동생 이사 후 친정이 있는 의왕시 쪽으로 집을 옮기는 것을 심각히 고려 중이다. 5년 전 구입한 25평형 아파트는 그동안 그의 각고의 노력으로 융자금이 수백만 원 대로 급격히 줄어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1월 초부터는 한 출판사에 고문으로 정기적으로 출근하고 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교수의 부탁으로 첫 개설하는 '이미지와 텍스트' 강좌도 한 주에 3시간 정도 맡을 생각이다.

“작년까진 전업작가로 글로 먹고 살고 다했는데, 위험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올해 죽어라 일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내년을 살 수 없을 거예요. 호구지책 하면서도 머릿속으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하고, 내가 갖고 있는 탤런트 믿어야 하고, 그래서 아직도 펼쳐 보일 것이 많다'고 되뇌곤 하죠”

그의 지난 삶의 이력을 보면 홀로 서기 위해 얼마나 악착같이 노력했는지 실감난다. 시집을 비롯해 영상 에세이, 기행문, 번역서 등 20여권의 다작을 해온 데다가 쉼 없이 다음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임신 2개월까지 무려 8년간을 초등학생 대상 글짓기 과외선생으로도 짬짬이 일했다. '호구지책'을 말하는 시인의 음성엔 자괴감이나 냉소보다는 삶의 원칙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긍정이 배어 있다. 그런데 그의 감각론을 듣자면 유추해 수긍이 가능하다.

글 쓰는 일은 치유와 정체성 찾기…축복 중 축복

“건전한 감각이란 잔가지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뿌리부터 올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오랜 세월 농사짓는 농사꾼 처녀처럼 시 쓰고 작업하며 얻어지는 감각이고, 시와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죠”

그는 20대 때 미대 입시 실패 후 이루지 못한 꿈과 실패에 대한 상처로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고, '치유'의 유일한 수단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노력했고, 지금은 “다 치유됐다”고 선언한다.

“글 쓰는 일, 내 일이 있고, 책 읽는 작업을 통해 축복을 받고…간혹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해도 내 안의 정체성은 분명하기에 창작을 하는 일에 대해선 한 점 후회가 없어요. 내 작업으로 (나와 딸애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날들이 많이 펼쳐지리라 희망해요. 이제부터 아프지 말아야죠”

글=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사진=이기태 기자 lee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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