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 /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요즘 우리는 매시간 TV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쓰나미)의 피해상황을 접하고 있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려진 사망자 수만 15만명선. 지진 발생 다음날 발표된 숫자가 1만5000명이던 것에 비하면 피해규모는 아직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았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때마침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휴가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해일에 휩쓸려 한순간에 생명을 잃었다. 각국의 피해자 숫자가 뉴스 자막으로 나열되는 것을 보면 이번 지진해일이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관광명소들은 이제 썩어 가는 시체의 악취로 가득찬 폐허의 도시로 변했다. 그나마 시신이라도 찾은 가족들은 다행이다. 죽은 모습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폐허의 콘크리트 더미 속을 뒤지는 가족들의 모습은 애잔하기 이를 데 없다.

지진해일이 일어난 그 바다는 이제 조용하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는 이제부터 해일 후폭풍에 몸살을 앓아야 할 판이다. 바로 전염병과의 전쟁이다.

사고지역에서는 지역 관리들과 주민들이 사망자들을 서둘러 매장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부패한 시신을 매개로 퍼질 수 있는 각종 수인성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진해일이 미국 LA해변을 강타했다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좋았다. 질병이 이전에 없던 지역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지진해일 전부터 이미 오염된 식수, 비효율적인 하수도 시설, 모자라는 병원시설 등으로 인해 매해 수만명이 콜레라로 쓰러지고 100만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사망해 왔다.

해일피해는 이미 아시아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던 콜레라, 말라리아 등의 병원균이 창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있다. 이 때문에 해일로 죽은 사람숫자 만큼의 전염병 사망자가 더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해일에서 겨우 살아남은, 빈곤층이 밀집한 지역의 아시아인들이 겪어내야 할 또 다른 고통이 느껴진다.

자연재해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첨단 과학을 이용해 각종 인명 살상무기를 만들어 서로 죽이지 않더라도 자연은 엄청난 힘으로 한순간 인간의 교만함을 무참히 밟아버린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환경이 얼마나 불안전하게 구성돼 있는지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삶에 대해 보다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대재앙을 계기로 지구촌이 한 마음으로 뭉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지에서 거부들이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을 아낌없이 내놓고, 각종 모금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도 피해성금을 비롯해 각종 구호의 손길을 현지에 보내고 있다. 이유 없이 사람들이 죽고 있는 이라크전쟁 소식으로 어지러운 심기가 한순간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지진피해의 끝이 어떻게 드러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도움을 주려 애써도 사고지역에서는 한동안 살아남은 것 자체가 고통인 피해자들이 속출할 것 같다. 이런 난세야말로 정치(政治)가 제 기능을 발휘할 때다. 정치의 본질적 기능은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욕망을 조율해 고통받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너무나 많은 이유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간 채워지지 않는 권력욕으로 인해 끊임없이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켜온 그들이 자기반성을 토대로 제 역할에 나설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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