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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엘부르즈(5642m), 북미의 매킨리(6962m), 남미의 아콩카구아(6959m),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963m), 남극의 빈슨매시프(4897m), 오세아니아의 코지어스코(2228m),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이 산들은 각 대륙의 최고봉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빈슨매시프를 끝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39·영원무역)씨는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아시아 여성으로는 3번째, 세계 여성으로는 12번째로 7개 대륙 7개 최고봉을 밟았다. 도전정신을 인정받은 오씨는 여성신문사가 수여하는 제3회 미지상 스포츠 부문에 선정돼 18일 수상한다.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3회 미지상 수상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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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오은선씨(가운데)는 8월 이상은(오른쪽), 정국향씨와 함께 여성 등반대를 구성,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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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산악인 오은선(39)씨는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5시20분(한국 시각) 남극의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사진)을 밟으면서 2년간 진행된 7개 대륙 7개 최고봉 완등을 마쳤다. 넓고 파란 남극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오씨에게서 당당함이 느껴진다.

“정상에 오른 소감이오? 담담해요. 제 여정의 마침표는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요”

영하 30∼40도의 거친 바람과 고소증(고산지역 산소부족으로 인한 질환)을 이기고 세계 최고봉을 오른 그의 모습에서는 산에서 연상되는 거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55㎝의 단신인 오씨는 '작은 키' 때문에 예전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에베레스트에 오른 그 순간부터 열등감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등반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안전'이다. '객기'를 부리지 않는 철저한 준비 덕분에 오씨는 산악인들이 경험하는 동상 한번 걸린 적이 없다.

“산을 오르면서 정복이란 단어를 단 한번도 떠올린 적이 없습니다. 산이 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만은 달랐다. 등반 중 만난 한국 산악인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소 부족으로 오씨는 거의 죽을 뻔했다.

“에베레스트는 제게 엄청난 자신감을 줬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엄청난 에너지가 몸 안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씨와 산의 인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틈만 나면 가족과 산, 들,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도봉산 가는 길에 인수봉에 점점이 박혀있는 사람들을 봤어요. 나이 들면 나도 해봐야지 했는데, 그 욕심이 저를 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상 등정은 정복보다는 산이 날 받아들였기 때문”

오씨는 대학(수원대 전산과)에 입학한 뒤 산악반에 들어가 주말마다 산을 올랐다. 인수봉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친 것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한번도 부상을 입은 적이 없다. 여름, 겨울에는 설악산과 한라산에 오르고 봄, 가을에는 오대산, 지리산을 등반했다. 그가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이다. 거칠면서 씩씩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져서다.

“산에 있으면 제 몸이 산과 대화를 해요. 집에서는 조금만 추워도 벌벌 떠는데, 이상하게 산에만 오르면 힘이 솟고 추운지도 모르고 정말 산사람 체질인가봐요”

대학졸업 뒤 오씨는 공무원으로 3년간 일했다.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으며 2∼3년간 준비를 거쳐 93년 꿈에 그리던 에베레스트 첫 등반에 나섰다. 직장엔 사표를 냈다.

“신들의 땅에 간다는 것이 너무 설레서 잠도 못 잤습니다. 하지만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까 고소증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오씨와 함께 떠난 등반대는 에베레스트 완등에 성공했지만 그는 7300m에서 다음을 약속하고 내려와야 했다. 귀국한 뒤 오씨는 4년간 학습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주말마다 산에 올랐다. 더 자유롭게 산에 오르고 싶어 회사를 그만둔 오씨는 2001년 K2 등반을 계기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마주쳤다.

에베레스트는 나에게 에너지와 자신감을 선물

“대학시절부터 제 삶의 중심엔 산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제가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나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오씨는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목표로 세우고 그 이듬해부터 2년간 착실히 실행에 옮겼다. 운도 따랐다. 영원무역에 입사해 등산비용을 지원받게 됐다. 정상에 오를 때마다 날씨가 험하지 않았던 점도 행운으로 작용했다.

천천히 걷는 것이 최고봉 완등 지름길

산에 오르는 것은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오씨는 산에서 길을 잃을 때는 반드시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힘겹게 걸어온 길을 돌아가는 것만큼 지긋지긋한 일이 없지만,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저는 산에 오를 때 절대로 무리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천천히 걷습니다. 처음에 힘이 있다고 무리를 하면 완등 성공이 어렵습니다. 내려와서도 생생하고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게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 합니다. 자연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몸 안에 에너지를 남겨둬야 합니다”

그는 귀국 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1월 5일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 동안 5분 간격으로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오씨는 “올해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인생 계획을 새롭게 세우는 시간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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