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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태

다큐멘터리 '나와 부엉이' 감독

60년대는 기지촌의 전성기였다. 박정희 정권때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있었으나 기지촌 여성들은 달러벌이의 역군으로 둔갑되어 기지촌에서 강제로 집단생활을 했다.

이제는 감금도 감시도 없지만 기지촌 성매매된 여성들은 스스로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 기지촌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죽음과도 같은 가혹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지촌 여성들을 향한 지독한 편견과 차별이 있는 한 이들은 기지촌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편견과 차별은 이곳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감시하고 감금하는 작용을 하게 됐다. 차라리 순응하며 적응하는 길이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만 분노가 언제나 그들을 괴롭힐 뿐이다. 술과 마약이 그 분노를 달래는 위안이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언제나 그 분노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나와 부엉이)를 제작하면서 그 분노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기지촌에 성매매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묘한 이중성을 느껴야 했다. 미군에 의해 고통 받으며 자신의 환경을 저주하지만 결코 포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진 않았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성매매 단속에 저항했다. 자신을 피해자라 규정하기보다는 생활인으로 봐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그것은 지금 성매매 특별 단속이 시작되고 거리로 나선 성매매 여성들도 이들과 비슷할 것이다. 단 그것이 언론에서 관심 있어 하는 포주에 의한 '동원된 여성/자발적인 여성'식의 자극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단지 성매매의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고 있는지 우리는 보고 있을 따름이다.

분열과 갈등은 분노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그 방향이 약간 다를 뿐 분노를 표출하는 맥락은 비슷해 보인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섭게 그 현실에 적응해 간다. 그 적응은 폭력적인 적응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외부의 시선으로만 이들을 판단하는 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피해 여성들의 분노와 폭력은 이제 단절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장의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자! 이분법적인 논리로 성매매 여성들이 이용당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다.

요컨대, 앞으로 지속적인 정부의 정책과 시민단체들의 활발한 현장과의 관계 맺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조금만 남성들이 '참을 수 없는 성욕'이란 논리로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자가당착적인 착각에서 벗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의 분노는 멈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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