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불교 설화, 서양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의 눈과 입을 빌린 한 여성 민속학자의 을유년 전망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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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그림동화 작가 강우현씨가 여성신문 신년호를 위해 '가족'그림과 축하 휘호를 보내왔다. 작품은 암탉과 수탉, 그리고 그들의 딸닭 등 닭가족이 이뤄내는 따뜻한 가족애와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불교설화 한 토막에서

광활한 우주 중심에는 파멸과 고통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엄히 막아내고 선을 굳건히 지켜가는 업무를 담당한 보살이 한 분 있는데, 이름하여 '군다리 보살'이다. 우주의 별나라(지구도 우주의 한 별이다)마다 전쟁이나 굶주림으로 혼란스럽고 인간들은 삶과 죽음의 고통으로 허덕이게 되는 것은 모두 악마의 짓이다. 그런데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란 존재는 바늘끝 만한 빈틈만 있어도 한순간에 먹물처럼 스며들어와 버리기 때문에, 선을 지켜내기는 한 찰나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아주 힘든 일이다.

어느 날 '군다리보살'은 수없이 쫓아내도 어느 틈에 다시 밀고 들어오는 악마들을 불철주야 지키다가 깜빡 졸았는데 그 순간에 들이닥친 악마들이 인간세상을 벌써 혼란과 파멸상태로 몰아 인간도 모두 악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분노한 보살은 악마를 처단하러 지상에 내려오기 전에 벌써 큰칼부터 빼어들었다. 높이 치켜든 칼로 악마냄새가 나는 것들은 모조리 내려치기 시작했다. 변명이나 자초지종을 들을 여유가 없다. 급히 내려치다 보니 칼을 받는 자가 악마가 아닐 수가 있었다. 이처럼 '군다리보살'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일을 당하면 피하지 않는 성미 급한 보살이다.

을유년(乙酉年) 올 한 해는 닭의 해로, 닭신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온 칼 같은(刃) 성품을 가진 '군다리보살'로 상징되는 해이다. 올 한 해 일어나는 일들은 그 공통점이 실천이 신속하여 빠른 성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충분한 심사숙고와 주의력 부족으로 인해 뜻밖의 국면으로 진행되거나 큰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고귀한 정신의 승리가 예상된다.

@그리스 신화 한 토막에서

올해는 또한 그리스 신화의 풍성한 수확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수호를 받는 해다. 여신 데메테르는 사랑하는 외동딸 페르세포네를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빼앗기자 더할 수 없이 애절한 슬픔과 고통으로 자기가 맡은 임무인 곡식의 수확을 팽개쳐버리고 피눈물로 방황한다. 메마르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지상에는 양식은커녕 오직 눈·비와 찬바람만이 들판을 뒤덮을 뿐이다. 물론 풍성한 수확은 없다.

어미에게 자식은 곧 생명이요 보람찬 수확이다. 자식과의 생이별은 곧 절망이요, 죽음이다. 이제 새해 새싹이 움트는 2월께 '호주제폐지법'이 다뤄진다 하는데, 여신의 수호 아래서 다시는 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굴레로 어미와 자식에게 생이별의 고통이 따르지 않게 되길 빌어본다. 아울러 실존과 현실에 굳건히 발 딛고 선을 지켜나가는 박진감 넘치는 한 해를 기대한다.

조덕자/ 국어국문학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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