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 김일 길러낸 프로레슬링의 살아있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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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일본 프로레슬링 계의 영웅으로 추대되고 있는 역도산. 사진은 영화 '역도산'의 한 장면.

어릴 적 흑백 TV를 통해 즐겨 보던 프로레슬링. 그 중에서도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이름 '박치기 김일'. 그런데 그 이름 뒤에 '역도산'이라는 일본의 프로레슬링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패전 후 피폐해진 일본인의 마음을 프로레슬링으로 뜨겁게 달군 이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북한 국적이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영화 '역도산'은 최강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한 남자 '인간 역도산'의 짧은 인생을 군더더기 없이 잔잔하게, 또 매우 힘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역도산을 연기한 설경구는 뛰어난 연기와 더불어 일본인도 놀랄 정도로 완벽한 일본어 발음과 억양을 구사해 스스로 대배우임을 입증해냈다. 역도산이 좌절할 때마다 늘 곁을 지키며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라는 말로 힘을 주던 아내 아야 역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의 절제되면서도 따뜻한 연기도 돋보였다. 요코즈나(스모 챔피언)를 꿈꾸며 정진하던 역도산은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요코즈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는 스모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을 익혀 성공을 거두고 일본에 돌아와 '역도산의 프로레슬링'으로 일본열도를 열광시킨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적을 낳았고 주위에서는 그를 이을 또 다른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해 움직인다. 역도산의 전성기 시절 일본 황태자가 체육관으로 견학 왔을 때 그가 보여준 과장된 퍼포먼스 신이 인상적이다. 갖은 천대를 받으면서도 성공만을 위해 애써온 청년시절을 보낸 그가 성공하여 일본인이 신처럼 떠받드는 황실이 직접 그를 보러 온 것이다. 시범을 보이는 제자들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은 역도산은 직접 링에 올라 자신의 모든 기량을 보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역도산의 모습에는 거물이 된 한 인간의 오만함과 불안한 눈빛, 그리고 '최고가 되어 마음껏 웃어보겠다'며 일본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온 그의 오기가 서려 있다.

이희라/ 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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