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가해자들은) 나이만 미성년이지 우리 아이를 협박하고 폭행한 방법이 너무 잔인해 도저히 미성년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최근 전국을 발칵 뒤집은 밀양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중생 자매 어머니인 김모(34)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김씨가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11월 25일이다. 불안한 모습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딸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추궁했던 김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를 들었다. 충격을 받은 김씨는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당시 함께 이야기를 들었던 김씨의 언니가 112에 신고를 하면서 이 사건은 경찰에 알려졌다.

인권의식 없는 수사와 언론에 아이들 학교도 못가

“비공개 수사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기사가 실리면서 경찰의 비공개 수사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신고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경찰의 수사방법에 이어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김씨에게 너무 잔인했다. 언론보도에는 실명만 거명되지 않았을 뿐 자매의 신분이 확연히 드러날 수 있는 정보가 여과 없이 실려 있었다.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기자들이 작성한 글들은 인터넷에서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김씨와 딸들에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혔다. 아이들의 음성을 변조해 방송에 내보내겠다고 했던 한 방송사는 약속을 어기고 그대로 음성을 방송에 내보냈다. 김씨는 즉각 방송사에 항의 전화를 했지만 “그렇게 힘이 남아돌면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라”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TV 뉴스 시간에 우리 아이의 음성이 방영된 뒤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의 친구는 '너 TV에 나온 것 맞지'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고 '당신 집 아이들이 맞느냐'는 확인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도움이 절실했던 그는 12월 7일 울산생명의전화에 긴급 상담 지원을 요청했다. 사건을 접수한 지역 시민 여성단체들은 즉각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사건에 공동 대처하고 있다.

억장 무너져도 다시 이런일 없도록 끝까지 싸울것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고 수사했다는 항의에 굴복해 경찰서는 사건 담당 형사를 두 번 교체했다. 피해자 가족에게 “여성단체 쪽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던 한 검사는 뒤늦게 “자신의 의도가 잘못 전달됐다”며 백기를 들었다.

김씨는 남편과 3년 전 이혼했다. '매맞고 사는 아내'였던 그는 아이들만 남겨놓고 집을 나와 식당 등에서 설거지를 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가 집을 비운 뒤 아이들은 '엄마에게 쏟아졌던 매'를 대신 감당했다. 현재 아이들은 남편의 집에서 나와 김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은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는데, 저에게서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질 않습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키우고 싶은데, 전남편이 자기가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지난 3년간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김씨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내 딸이 겪은 일을 다른 누군가의 딸이 겪는 일 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자책감의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중이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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