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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장 선생님은 1942년 생, 우리 나이로 63세라고 하셨다. 그분을 만난 것은 한 인터넷 동호회의 오프라인 공부 모임에서였는데,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셨다. 초면이었지만 시원시원한 목소리하며 활달한 태도가,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여교장의 풍모에 아주 잘 맞는 분이었다.

그 날 모임의 주제는 어르신과 대화하는 방법. 노인복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어르신과의 대화법, 치매나 뇌졸중 등의 질환을 가진 분들과의 효과적인 대화 기술 등을 서로 이야기했고, 또한 대화할 때 화부터 낸다든가, 이야기 상대로 나이 많은 남자만 찾는다든가, 아니면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분 등 대화하기 어려운 사례를 놓고 구체적인 해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나이 드신 분들과 젊은 사람들의 어법 차이, 서로 맞지 않는 행동과 태도에 대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었다. 그 때,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언젠가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앞에 선 두 젊은 남녀가 꼭 끌어안고 있더란다.

몇 번 눈치를 주었지만 아랑곳없이 서로에게 폭 빠져 있어서 정말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시겠더란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길, “아가씨, 어디 아파? 그렇게 기대고 서있을 정도면 차라리 여기 앉아. 내가 자리 양보해 줄게!” 얼굴이 빨개진 두 사람이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교장 선생님의 무용담은 끝이 났다.

20대부터 30대, 40대, 50대가 고루 섞여 있던 그 자리에는 순간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젊은 쪽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도 그 이야기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 직전에 교장 선생님께서 한 건 하셨기 때문이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스물 아홉 살 청년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컵에 물도 따르고 냅킨도 놓아주며 봉사를 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당신의 고맙다는 인사에 눈도 안 맞추고 대답도 안 했다고 면박을 준 참이었다. 인사를 안 받은 것이 아니라 소란스러운 가운데 서빙을 하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옆에서 설명을 해 드렸는데도 그 분은 큰 소리로 청년에게 쏘아붙이셨다. 사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고, 그러니 사람들이 그분 말씀에는 가능하면 토를 달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신이 옳아서 다들 수긍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 때 우리의 '흑기사'가 나섰으니, 다름 아닌 교장 선생님보다 한 살 아래라고 자기소개를 하신 62세 남자분이었다. “제가 좀 자유로운 편인지는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 그냥 놔두면 안됩니까? 앞으로 그런 일이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진 않을텐데 굳이 대놓고 면박을 줄 것까진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조용히 말씀을 하시든가…”.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그 후 60대 두 분은 뜨거운 논쟁 속으로 들어가셨고, 우리는 말 그대로 '경청'을 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솔직히 나도 젊은 사람들의 지나친 애정 표현에 눈을 돌리는 일이 많다. 긴 연애 기간 동안 뽀뽀도 손꼽을 만큼 그것도 어두운 골목에 숨어서 했던 아줌마가, 대낮 버스 정류장에 서서 길고도 깊게 입맞춤 하는 젊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래도 교장 선생님께서 “아가씨, 어디 아파?”하신 것에는 거부감이 일었다.

작은 목소리로 그런 행동을 삼가줬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쉽게 바꾸지 않을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지속적이며 부드러운 방법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들 마음 속에 작은 울림만 전하면 됐지, 도망갈 곳 없이 쫓거나 모욕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 교장 선생님께 필요한 것은 무용담보다는 에둘러 가는 현명함이 아닐는지.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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