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중성적 이미지로 남성성과 여성성 재구성-'아름다운 소년,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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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TV의 진행자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 저메인 그리어.

'욘사마'를 부르짖으며 한국을 찾는 수많은 일본 중년 여성들은 강한 남성이 아닌 부드럽고 자상한 '준상'의 이미지를 가진 탤런트 배용준에 열광한다. 육체적 힘과 영웅주의가 판치는 축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호나우두보다는 '미소년'분위기의 베컴이나 오웬 등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소년의 이미지를 지닌 유승민이 큰 인기를 끌었다.

강한 남성의 표상을 필요로 했던 전쟁시대인 근대의 터널을 지나온 지금, 지배적이고 강한 마초(macho)적 남성은 인기는커녕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호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페미니스트 작가 저메인 그리어(Germaine Greer)는 저서 '아름다운 소년, 보이'(저메인 그리어 지음/새물결/3만9800원)를 통해 이러한 대중문화의 키워드를 예리하게 간파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19세기부터 기억의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년들'에 대한 최초의 문화적 복권서”라고 밝힌 이 책은 소년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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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라는 중성적 이미지에 도발적 해석을 곁들여 '여자는 아름답고 남자는 힘이 세다'는 두 성(性)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종식시키며 기존의 성차별적 개념으로 가득 찬 문화사와 예술사를 전복시킨다. 저자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학생들은 '아름다운(beautiful)'이라는 단어를 남성에게 사용하는 것은 틀리다고 배운다. 외모가 괜찮은 남자들은 '잘생겼다(handsome)'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잘생겼다'는 말은 미적인 특성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특성”이라며 예술사에도 젠더적 관점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어는 200점이 넘는 그림에 일일이 해석을 달고 대다수 작품을 설명하면서 소년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결코 외설적 취향이 아니고 19세기 이전에는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철저하게 역사적·문화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라는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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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에 조반니 란프랑코가 그린 '젊은 남자와 고양이'. 이 그림에서 소년은 천을 살짝 두르고 오른손을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다. 침대 속을 향한 시선이 친밀감과 함께 발기한 성기를 보여주기 곤란함을 암시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동성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반니 란프랑코의 '젊은 남자와 고양이'에 “때때로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청년의 붉어진 뺨과 빛나는 눈은 이미 정사가 끝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양이는 분명 만족스럽게 가르랑거리는 듯하다”는 다소 충격적인 해석을 달아놓기도 했다.

'여자 내시' '완전한 여성'등 여성주의 관점의 저서를 통해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리어는 남성성이 근육과 권력으로만 이상화되는 과정을 철저히 해부하며 그것이 19세기에 정점에 달한 허구화된 남성성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마는 '소년 시절'의 아름다움에 대한 문화적 탐구를 통해 시각적 즐거움에 대한 여성들의 능력과 권리를 좀더 세련되게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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