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그들의 쓸쓸함은 부모를 몰라 주는 자식들 때문이 아니라 사정없이 흘러간 세월 때문

이었다. 자식이 부모를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소망이 아닌가. 자식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면 저절로 알 일인데.

며칠 전 방영된 김수현 씨의 TV드라마 '홍소장의 가을'에 대하여 칭찬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작가의 탁월한 필력과 최불암 김혜자 씨의 호연으로 이 시대 붕괴되어가는 가족의 가치를 새삼 음미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주종이다. 동의한다.

평소 나는 모두들 '톡톡 튄다 또는 콕콕 찌른다'고 감탄하는 김수현 씨의 대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대사를 영 거슬려 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가슴 속에 품은 말들을 마구 내뱉으면서 살 수 있는 건지, 그렇게들 칼날을 갈고 살면서 어떻게 그 다음날 흔연한 듯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건지, 남들은 속 시원하다고들 하건만 나는 대개 기분이 잔뜩 구겨지기 일쑤였다(어쩌면 내 안에 숨은 독기를 그가 대신 뿜어 주기 때문에 못마땅해 하는 척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도 콕콕 찌르는 대사들 때문에 불편할 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부드러워진 덕분에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내용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노년의 불안과 쓸쓸함, 자식들의 이기심, 부모 자녀 사이의 거리, 갑작스런 퇴직이 가져오는 남편의 좌절과 아내의 실망, 신뢰가 사라진 부부관계 등 요즘 우리 가족들의 문제를 조곤조곤 잘 풀어 놓았다. 섣부른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다만 한 가지 동생네 부부(임채무 박정수)의 성격이 지나치게 정형화되었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 할까.

아이코, 어쩌다 보니 드라마 시청소감을 늘어놓고 있네. 이게 아닌데.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는, 글쎄, 약간은 신파조로 들리겠지만, 시간의 흐름 즉 다시 말해서 세월에 관한 소회였더랬다(소회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왜 이렇게 고리타분한 냄새가 날까. 컴퓨터하고는 안 어울리는 말 같아).

웬 세월 타령? 시간아, 너는 네 마음대로 가라, 나는 내 마음대로 갈 테니라고 큰소리 탕탕 친 게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그 날 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깨친 바가 있었다. 아무리 시간과 상관없이 살려고 해도 시간은 시시때때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니, 언제 적 최불암이고 김혜자란 말인가. 20여년 전 '전원일기' 때부터 그 두 사람은 이미 노부부였지 않은가. 반면에 당시의 난 비록 아이들이 셋씩이나 주렁주렁 달려 있긴 했지만 아직 30대의 새파란 청춘(?)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은 내게 부모님과 같은 세대로 각인되었다. 그 이후 그들은 언제나 나보다 한 세대 위의 사람들로 보였다. 가끔가다 혹시 중늙은이 역할을 맡아 연애 비슷한 것이라도 할라치면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만 했다. 그냥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갈 것이지 뭘 그렇게 억지를 부리나 싶은 것이.

그런데 이번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그 동안 내가 착각 속에서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두 사람은 더 이상 나의 부모세대가 아니었다. 더도 덜도 아니고 그저 딱 내 세대였다. 나야 물론 죽었다 깨도 김혜자가 늘 맡아온 현모양처를 흉내낼 순 없지만 아무튼 이제 막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들 부부는 나와 같은 연배였다. 문제는 드라마의 역할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의 실제 나이도 나와 별 차이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세대였다. 한때 나보다 한참 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내 옆에 서있었다! 그래,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시간 따위엔 매이지 않고 살겠다던 큰소리는 한갓 헛소리일 뿐이었다. 언제나 젊은이 역만 어울릴 줄 알았던 나는 어느새 드라마 속에 나오는 노부부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나는 아주 오랜만에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쓸쓸함은 부모를 몰라 주는 자식들 때문이 아니라 사정없이 흘러간 세월 때문이었다. 자식이 부모를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소망이 아닌가. 자식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면 저절로 알 일인데.

흘러간 세월은 아쉬워하면 그 뿐이지만 남겨진 세월의 무게는 또 얼마일까. 그 긴긴 세월(평균 수명만큼만 산다 하더라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쓸쓸함 속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와 재미를 건져 낼 것인지, 몽땅 잠재워 놓은 줄로 알았던 욕심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잠시 마음이 산란해지던 밤이었다. 사다 놓은 소주가 없어서 유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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