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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인 선후배나 친구들이 모여 앉으면 아무리 다른 화제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아이들 공부 이야기와 노년준비 이야기로 흘러가게 된다. 우리나라 학부모는 모두가 교육문제 전문가라고 할 정도이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노년준비는 언제부터인가 중년세대에게 큰 걱정과 부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나이듦과 늙음의 의미를 차분하게 따져볼 새도 없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은 노년준비를 무조건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들여다보는 우리 사회의 물질 중심의 사고 방식과 경박함 때문이다. 여기 저기서 노후 생활 자금이 6억이니, 적어도 4억원에서 5억원 정도는 있어야 된다느니 하면서 '노년준비는 곧 돈'이라고 주입하는 형국이니 돈 없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초조하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행복한 노년은 '실버 재테크'나 '노(老)테크'만으로는 어림도 없으며, 노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사이좋게 어우러져서 함께 가야 한다. 거기에는 물론 돈도 꼭 필요하고, 건강 역시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며, 가족과 친구와 일과 여가와 취미와 죽음준비까지 모두 빠짐없이 들어가야 한다.

지난주에 선후배와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늙는 게 좋을까'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오히려 '나는 이런 노인 참 싫더라, 그렇게는 늙지 말아야지'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몇 가지를 소개하는 것은 혹시 노년에 접어든 지금의 내가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내가 이렇게 될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먼저 자녀나 주위 사람들에게 응석을 부리며 어리광을 피우는 '응석형'이다. 이런 분은 아이처럼 징징 우는 소리에 고자질도 잘 하고, 말도 잘 전하고, 엄살도 잘 부리고, 안 되는 것을 졸라대고, 삐치기도 잘 하신다. 자신에게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하소연하는 그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모두들 가까이 가기 싫어했다.

또한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욕심형'도 물론 싫다고 했다. 돈 욕심, 자식 욕심으로도 모자라 목숨에 대해서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다.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없는 데도 돈은 자식들의 효심을 달아보는 저울이고, 조금만 몸이 아파도 온 가족 소집에, 병원에 가면 영양제 왜 안 놔주느냐 소리부터 지르신다. 자식들 하는 양이 맘에 차지 않아 화가 나고, 자식들이 가져오는 돈이 또 성에 차지 않아 속이 상한다. 자식들 어려운 형편은 안중에도 없고, 세상 그 누구도 그 욕심을 채워드릴 수 없다.

다 큰 자식들의 의견 같은 것도 소용없고, 그저 당신만 옳다 하시는 '독불장군형'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돈으로, 힘으로, 경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독선적으로 행동하시니까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없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는데도 몰라준다고 섭섭해하고 화내는 일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답답형'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말이 안 통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이든 유세를 하든, 호통을 치든, 무표정으로 대응을 하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내 인생에 양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신다. 이때 옳고 그름은 아무 기준이 되지 못하며, 사회적인 통념이나 관례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상대하는 사람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항복을 하고 피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이가 벼슬이며, 늙음이 자격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가운데 많은 유형이다. 일단 모르쇠로 일관하시게 되면 그 누구도 마음을 바꾸게 만들 수 없다. 역시 노년의 외로움을 자신의 몫으로 맡아놓으신 분들이다.

그 날 모임을 마치고 헤어지면서 다들 인사 대신 말했다. “아, 정말 자∼알 늙어야겠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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