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한국 경제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벌써부터 빨간 불이 켜져 있는 상태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1년새 11단계나 추락했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의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지표인 경기 동행지수가 5개월째 하락하고 있고, 지난해 7월 이후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급격히 재하강하는 '더블딥(double dip)' 조짐이 역력해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행 총재는 내년 성장률이 4%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위기 불감증'의 정치가 문제

우리 사회를 불안과 절망, 무기력으로 몰고 가는 근본 원인은 정치 불신과 경기침체의 고착화가 아니라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현재의 위기를 위기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상쟁(相爭)만을 일삼는 '위기 불감증'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민생은 이랑곳하지 않고 한가롭게 좌파 논쟁, 총리 무시 전략 구사, 헌재 수구 논쟁 등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가브리엘 알몬드(G. Almond) 교수는 모든 국가는 발전의 정도와 상관없이 다섯 가지 유형의 과제와 위기를 반드시 겪는다고 주장한다. 첫째, 민족 정체성을 바로 잡기 위한 '민족 만들기'(nation-building) 과제이다. 이 과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국민통합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국가의 통치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국가 만들기'(state-building) 과제이다. 이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정부의 침투력이 약화되는 국가 행정력에 위기를 맞게 된다. 셋째, 경제 발전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경제 만들기'(economy-building) 과제이다. 이 과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경제적 풍요 사회의 도래를 어렵게 하는 경제 위기가 초래된다. 넷째,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정책 결정에 반영시키는 '참여'(participation) 과제이다. 정부의 대처능력은 부재한데 참여만이 판을 치면 참여 폭발의 위기를 겪게 된다. 다섯째, 경제 성장의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distribution) 과제이다. 이것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사회 계층 간 분열이 증폭되는 위기가 도래한다.

'해도 안된다'는 패배주의 극복해야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정부와 정치권의 위기 진단과 대처능력이 극도로 미약한데 각종 위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하면 된다'는 불굴의 정신(sprit)은 사라지고 '해도 안된다'는 패배주의가 엄습하고 있다.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여야 모두 통렬한 참회를 해야 한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극단으로 몰고가는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정치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는 확고한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정치이다. 우리는 지금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민심이 폭발 직전에 와 있으며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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