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삐삐밴드의 이윤정을 필두로 자우림의 김윤아

옐로 키친의 도순주·네스티요나의 요나 등 전천후 맹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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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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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필터

90년대 이후 SES, 핑클, 베이비복스 같은 미소녀 그룹들이 주류 가요계의 한 핵심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은 장르 편협적이고, '소녀'와 '여성'을 오가는 다소 획일적인 섹슈얼 메타포로 고착되는 그물망에 여전히 포획되어 있다.

때문에 여성의 음악 활동상에서 보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록 밴드에서 나타난다. 이때 여성은 대개 밴드 앞에 선 보컬리스트이다(남성 연주자-작곡가-들은 '뒤'에 있다). 이런 '프런트우먼을 내세운 팝·록 밴드'의 효시 격은 삐삐밴드였다. 2인 남성 베테랑 앞에 선, 당시 신인 여성, 아니 소녀 이윤정은 빈티지 계열 패션에 천방지축으로 악쓰거나 중얼거리며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불러댔다. 기존 댄스 음악계를 조롱하면서 진지하고 무거운 록의 강령 역시 비웃으며 '싸구려의 미학화·예술화'를 시도했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셀링아웃'을 단행하며 주류 가요계로 진출한 자우림의 김윤아일 것이다. 그는 밴드의 핵심으로서 친근한 이웃집 언니·누나 스타일과 팜므 파탈적 악녀형 이미지를 동시에 전유하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한편 시원시원한 '여걸형' 체리필터의 조유진은 힘있고 강렬한 가창으로 여성 록 보컬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것은 강하지만 부드럽고, 터프하지만 섬세한 여성만의 결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더더의 박혜경이나 스웨터의 이아립처럼 '청순형' 이미지, 상큼하면서도 발랄하고 말랑말랑한 목소리는 모던 록 여성 보컬만의 영역이 되었다(특히 이아립은 '우울함의 정치성'과 섬세한 신변잡기적 가사를 구현하고 있다).

보다 다채로운 양상은 보다 '인디적인' 밴드들에게서 나온다. 이때 여성이 적극적으로 음악 창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인디의 선구적 밴드 옐로 키친의 도순주는 초기 시절 노이즈가 혼용된 그런지 록에 차갑고 이지적인 음악을 담았고, 이후에는 록음악 및 노래 구조를 해체한 테크놀로지(특히 컴퓨터) 친화적 음악,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음향에, 내면으로 침잠하는 독특한 무드를 조성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남상아는 중성적 이미지로 기타 연주와 목소리에서 거칠고 분방한 록음악을 들려주었고, 더더의 두 번째 여성 보컬 한희정은 '푸른 새벽'이라는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했다. 보다 이색적 밴드로 네스티요나가 있다.

작곡, 노래, 키보드 연주를 모두 담당하는 요나는 밴드의 핵심으로 재즈, 보사노바, 트립합, 사이키델릭 등을 오가며 어린 아이 같은 순진한 색깔부터 그로테스크하고 사악한 분위기까지 종횡무진한다.

대개 밴드 앞에 서있는 여성 보컬은 성 역할의 문제와 더불어 기존 여성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소비라는 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여성 보컬을 앞세워 말랑말랑한 음악을 하는 밴드라는 모던 록의 공식화는 그런 폐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주변적이지만, 반면 중심적이다. 기존 통념의 적극적 활용 혹은 새로운 도약도 그 여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돌파'가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지선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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