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사상과 여성주의'섹션

세계생명문화 포럼의 포커스는 생명운동의 핵심을 여성성에 두고 이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생명사상과 여성주의'섹션이다. 김재희 언니경제연구소 소장의 '카오스 이론과 여성주의',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김정희 교수의 불교이론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생명사상과 여성', 녹색대학 한면희 교수의 '남성 생태주의자가 본 여성주의'발제를 요약, 정리한다.

가부장적 기성불교가 여성불자 보살행에 걸림돌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의 '불교의 생명사상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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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전'(김봉준 외 작). 동아시아적 자연범신성에서 다시 찾는 신성(神性)과 동방신화, 조상 그리고 뭇생명에서 찾는 숭고한 현상을 신당으로 조형화했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의 김정희 교수는 '불교의 생명사상과 여성'에서 불교사상을 생태학적 세계관의 하나로 보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김 교수는 “불교에서 보는 생명 혹은 생명과정은 나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물질이 분리될 수 없는 유기체적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유기적 관계를 통해 인간과 물질, 인간과 자연이 자타불이(自他不二)의 통합적 존재임을 주장했다. 또 이와 같은 불교의 생명사상 속에서 만물에 자비를 행하는 보살행이 대다수 여성신도에 의해 발현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한국불교가 민중의 무속신앙과 결합돼 이어져 온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 특히 토착신앙 속에 전해 내려오는 생명신 삼신할미와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고 그 고통 속에서 강인한 생명신으로 재탄생한 바리데기의 설화를 통해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어머니, 딸의 모습을 재발견해냈다. 김 교수는 불교 교단의 가부장 문화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자기 문제로 직시하지 못하는 기성 불교의 한계가 여성불자들의 보살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보살행이 노인이나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 소년·소녀 가장 결연, 호스피스 활동, 사찰이나 교단 행정의 보조, 큰스님 법문 녹취 등 가정 내 주부 역할의 연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성 종단 안에서 보살행이 보이는 이와 같은 한계와는 달리 기성 종단 밖, 예를 들어 원불교 여성회와 정토회 여성불자들의 보살행처럼 한계가 없는 보살행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통해 “이들의 자비행은 여성주의적 언어로 말하면 보살핌의 여성주의 윤리의 전형이며 생명 여성주의적인 여성실천의 전범을 창출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주의와 카오스이론의 연대 모색

김재희 언니경제연구소 소장의 '카오스 이론과 여성주의'

언니경제연구소의 김재희 소장은 '카오스이론과 여성주의'발제에서 현대과학의 가치 중립적 이론인 '카오스이론'과 실천적이며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여성주의의 연대를 시도했다. 김 소장은 이 같은 시도에 대해 “공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인류가 절망을 극복하고 생존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단계의 문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돌파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주의와 카오스이론이 근대과학과 어떤 점에서 대립하는지 그 특성과 상호소통의 접점을 모색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근대과학의 파괴성을 해체해 온전한 생명의 이해와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자 했다”면서 “이 두 이론은 환원주의 방법론과 차이에 대한 인식이라는 두 가지 지점에서 명확하게 근대과학과 대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은 본래 인간의 탐구능력을 능가하는 '카오스'며 '복잡성'자체인데 근대과학은 철저한 환원주의에 입각해 간략한 법칙을 뽑아내 전통적인 자연에 대한 이해 위에 군림하고 이와 같은 근대과학의 법칙을 이해한 소수 특권층은 전지전능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근대과학이 자연현상의 평균적 특성을 잡아내는 데 주목하고 평균을 벗어나는 개체들은 평균에 맞추거나 통제하고 축출했던 반면 카오스이론과 여성주의가 개체들 간 '차이'에 관심을 갖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젠더 개념이 근대과학의 이분법적 사고의 원천으로,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남성의 지배를 생물학적 조건 또는 판단의 근거인양 정당화시켰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김 소장은 “통제가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이론인 카오스이론과 남성들에 비해서 관계중심적이며 탈전통적, 윤리적인 여성주의야말로 조직의 생명력을 높이고 다양성을 통해 유기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인간의 자연지배 가부장성 드러냈다

한면희 녹색대 교수의 '남성 생태주의자가 본 여성주의'

세계생명문화포럼에서 '남성 생태주의자가 본 여성주의 - 평가와 전망'을 발제한 한면희 녹색대 교수는 “여성주의는 역사 발전에 따라 변화·발전해왔으며, 특히 생태 여성주의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가부장제와 직결되거나 연계되어 있음을 드러낸 것은 큰 성과이며, 어떤 생태주의 해법도 여성주의의 통찰을 반영하지 않고는 온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생태 여성주의를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와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로 나누어 설명한다.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의 영성적 결속 관계를 강조하고 자연에 내재하는, 살아있는 어머니 여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 대안문화를 조성하는 데 주력, 정치도 영성적이고 감성적으로 풀고자 한다. 이에 비해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가 다른 시민운동과의 연대에 좀 더 유리하다고 본다.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는 여성억압이 가부장제의 차별구조의 필연적인 결과 중 하나라고 보지만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억압을 여성 억압으로 환원시키는 데 반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는 여성적 가치가 남성적 가치보다 낫다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비판하는 열린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에 대해 문제점도 지적한다. 우선 '정의'의 규범에 의거해 새 문명과 사회제도를 위한 실질적 대안과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부족하고, 또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가 생태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폭넓게 전망하기 위해서는 다른 다양한 생태주의의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의 생태 여성주의에 대한 설명에 대해 일부 생태 여성주의자들은 남성문명 속에 살고 있는 남성생태주의자로서의 자기성찰이 부족하고, “가부장제 문명과 제도가 생태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는 생태 여성주의 입장에 대해 한 교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점 등을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다.

정명희 기자 ANTIGONE21@한정림기자 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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