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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고 파란 점퍼에 등에는 배낭 하나씩을 메고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는 드디어 KTX, 그렇게 타보고 싶어하시던 고속철을 타기 위해 개표소를 통과하셨다.

지난해 여름 허리 수술을 했지만 완치되지 않아 오래 걷지 못하는 아버지와 약해진 다리 때문에 걸음이 느린 어머니, 두 분 모두 잡은 손을 놓칠세라 조바심을 내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차라리 직접 모시고 다녀오면 좋으련만, 부산까지 무사히 잘 가실 수 있을지 내 마음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순간 '이번 여행이 두 분이 가시는 마지막 여행일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드시는 두 분의 얼굴에는 '금혼(金婚)여행'의 기쁨과 흥분이 넘쳐난다.

올해 여든 둘, 일흔 일곱이신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하신 것은 1954년, 딱 50년 전의 일이다. 흑백사진 속 신랑은 짙은 색 양복 정장 차림이고 신부는 하얀 한복에 면사포를 썼다. 신기하게도 신랑 신부 뒤쪽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있고, 그 위로는 '화촉지전(華燭之典)'이라고 쓴 붓글씨가 보인다. 양쪽에 들러리를 세 명씩 거느리고 선 신랑 신부는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한 몸매에 깨끗하고 팽팽한 피부를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사진이지만, 정말 50년 전에 이러셨구나 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니 새삼 두 분의 젊음이 눈부시다. 아무리 인생 80시대라고는 하지만, 50년을 산 사람도 뒤를 돌아보면 언제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감회가 깊을 텐데 부부의 연을 맺고 50년을 살았다면 이런 저런 소회가 없을리 없겠다.

워낙 표현을 잘 안 하시는 아버지는 그래도 어머니를 향해 “무력무능(無力無能)한 나를 마다하지 않았던 아내의 고마움, 적빈(赤貧) 속에서도 삼남매를 낳아 기르고 가르친 아내의 노고, 지금도 쉴새 없이 그들을 보살펴주는 아내의 사랑, 고맙기 그지없는 아내…”란 글을 당신의 자전 수필집 첫 장에 남겨두셨으니 그 마음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그럼 어머니는 어떨까. 며칠 전 어머니께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아 여쭈어보니, 아버지가 돈을 못 번 것 외에는 그다지 큰 아쉬움은 없다면서 그래도 돈이 많았다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돈 없이 산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하긴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약속을 하면서 돈 벌어오라는 것만 아니면 뭐든지 하겠노라고 다짐했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다시 태어난다면 아버지를 꼭 다시 찾아서 만나고 싶다는 어머니, 참 행복한 분이시다.

노년의 부부가 서로에게 남긴 글이나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에는 인생 선배, 결혼생활의 선배들이 걸어온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살아 있으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가정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이 골고루 다 녹아있다. 그러니 괜히 코가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을 깜박거린다. 그 안에는 젊은 부부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정과 더 이상 무거울 수 없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어서이다.

세 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부산에 도착하신 두 분은 우선 태종대며 자갈치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숙소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해오셨다. 고향인 바닷가 마을을 잊지 못하는 어머니는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가 마냥 좋으신지 “이번에 바다 구경 원 없이 하고 가겠다”고 하신다. 무사히 도착하셨다는 소식만으로도 한숨 돌리는 것을 보면, 내가 두 분의 총기를 지나치게 염려했었나보다. 아이고, 죄송해라. 그나저나 오늘 밤 두 분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 무슨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실까? 순식간에 가버린 듯한 당신들의 50년 세월을 이불 삼아 단잠을 주무셨으면 참 좋겠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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