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봄산에 들어가면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머리를 밀어내는 연녹색 새싹의 숨결에 살고싶다는 의욕이 솟아오르는 대신, 가을산에 오르면 남은 찌꺼기를 활활 태우고 깔끔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나를 사로잡는다.

대학 졸업반 가을, 내장산으로 수학여행이란 걸 갔다. 내장사에서 산을 타고 백양사까지 걸어갔는데 가을산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 정상에 올라 노랗고 빨갛게 물든 숲을 내려다보니 마치 화려한 양탄자를 펼쳐놓은 것만 같은 게 그냥 데구루루 구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실은 그때까지 양탄자라는 물건은 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느꼈다니 상상력이 뛰어난 건가, 아니면 상투적인 표현인가, 갑자기 의문이 드네).

주변 마을로 내려오니 감나무에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그 뒤로 하늘은 왜 그리도 지독스럽게 파랗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허름한 다방을 찾아들어 사흘 만에 신문을 보니 설악산 계곡에서 등반훈련을 하던 대학생들이 떼죽음을 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다음 날이 신문사 입사시험 일이었다. 그 신문사는 논설 대신 작문을 요구했는데 출제 제목이 이런 우연이 있나, 간단하고 명료하게 한 글자였으니, 바로 '산'이었다. 가슴과 머리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느낌과 생각을 그대로 쏟아내기만 했는데도 시험지 두 장이 모자랐다. 예감이 좋았다.

아무튼 봄의 산도 좋지만 가을산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봄산에 들어가면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머리를 밀어내는 연녹색 새싹의 숨결에 살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오르는 대신, 가을산에 오르면 남은 찌꺼기를 활활 태우고 깔끔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하다 싶으면 나는 단풍놀이를 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무던히도 단풍놀이를 다녔다. 청계산이나 남산은 말할 것도 없고 설악산과 내장산도 뻔질나게 갔다 왔다. 내가 하도 단풍 단풍 해서 그런지 작년에는 둘째아이가 다 '단풍놀이가 그렇게 좋으세요?'하고 묻더니 자기하고 함께 가보잔다. 마침 TV에서 연례행사대로 단풍놀이 하느라고 몰려든 인파를 보여줄 때라 마음이 솔깃해졌나 보았다.

백양사에 들렀을 때만 해도 별로 반응이 없던 둘째는 내장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탄을 멈추지 못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내장산 단풍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잖은가. 둘째는 아, 이래서 그렇게들 단풍놀이를 하러 복잡한 길을 나서는 거로군요라며 나의 바람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인정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봄부터 미국 보스턴에 사는 큰애가 야금야금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보스턴 단풍구경 안 오세요? 아버지하고 함께 오시죠. 얘, 여기서도 충분히 한다. 비싼 돈에 고생하면서 그 멀리까지 갈 게 뭐 있니? 보스턴 단풍은 달라요. 단풍이 단풍이지 뭐가 달라. 우리나라 단풍만으로도 충분해, 얼마나 예쁘다고. 아니에요, 이곳 단풍은 형광빛이 난다니까요. 단풍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전화를 걸 때마다 큰애는 끈질기게 유혹했다. 유혹이 되풀이되다 보니까 들은 척도 안하는 내가 혹시 너무 매정한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친구들은 요즘 어떤 아들이 결혼을 하고도 자기 부모를 오라고 오라고 하냐면서 오라고 할 때 못이기는 척하며 가야 한다고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거들었다. 또 이 나이엔 어디든지 갈 수 있을 때 가야 된다고, 조만간(? 아이고, 슬퍼라!) 다리에 힘 빠지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위협 섞인 권고도 했다.

결국 어렵사리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말았다. 단풍놀이하러 미국 간다면 요즘같이 살기 팍팍한 시절에 이웃들에게 염장질 하는 것 같아서 잔머리를 굴렸다. 아, 그렇지, 결혼기념여행이라고 둘러대면 되겠군(이건 또 한 술 더 뜨는 염장질?).

과연 큰애 말대로였다. 그곳 단풍은 우리 단풍과 좀 달랐다. 단풍의 진수를 만끽하게 해 준다며 주말에 큰애는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 지역으로 차를 몰았다. 단풍지도에서 피크지역으로 표시된 곳이라나.

거의 40년 전 내장산 단풍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난 몇 시간 동안 그저 아, 아, 하는 감탄사밖에 토해낼 줄 몰랐다. 잔뜩 찌푸린 날씨였는데도 나뭇잎들이 뿜어내는 형광빛으로 숲 속은 오히려 화∼안 했다. 노란색과 오렌지색 그리고 빨강이 어우러진 숲은 한껏 유치하면서도 우아했다. 화려하고도 깔끔한 마무리. 게다가 나무들은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나잖아. 다음 생에서는 새가 아니라 나무로 태어났으면.

며칠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 난 잠시 헷갈렸다. 내가 이 먼 곳을 비싼 삯을 들여 도깨비처럼 날아왔다 날아가는 이유는 과연 단풍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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