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한 첫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에 대해

여성·환경·반독재운동 주목첫 여성박사에 환경부차관까지

검은 대륙 그린벨트운동 '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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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평화는 삶의 환경을 보호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노벨위원회가 왕가리 마타이(64·사진)를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발표한 내용이다.

왕가리 마타이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 그리고 최초의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이번 노벨평화상의 의미는 평화담론이 '환경'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환경보전에 기여한 3세계 여성의 공로가 제대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여성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독재에 반대하여 싸운 민주투사!!

이러한 왕가리 마타이의 이력에는 아프리카 케냐의 어두운 정치, 경제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케냐는 다른 아프리카 신생독립국과 마찬가지로 외국의 자본과 국내의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커피, 차와 같은 수출용 단일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 그 결과 전체 삼림의 97%가 파괴되었고 토양유실, 사막화와 기근으로 빈곤은 더욱 심화된다. 풍부한 숲과 전통적인 간작 농업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먹을거리는 마켓에서조차 구하기 어려웠고 커피나 차로는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케냐 여성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마타이는 환경파괴로 더욱 빈곤해진 여성의 현실을 목도하게 되고 환경복원, 풀뿌리 경제회생, 여성세력화를 위한 그린벨트운동을 기획한다. 이 운동을 통해 약 3000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으며 10만명의 여성이 조직화되었고 8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린벨트 운동 초기에 있었던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가 나이로비의 마지막 녹지인 우후루공원에 고층빌딩을 지으려는 독재자 모이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하고 나서 이를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환경운동은 정부의 탄압 속에 유혈사태로 이어지곤 했다. 그는 케냐의 환경문제, 경제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고 케냐의 민주화를 위한 고단한 행보를 시작한다.

91년 마타이는 야당지도자들과 함께 민주주의 탄압과 민주인사를 살해한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바로 감옥에 갇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범을 아들로 둔 어머니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우후루공원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한다. 농성장에 난입한 경찰의 폭력으로 크게 다친 그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자마자 정치범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병실에서 갖는다. 이는 세계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고 모이 대통령은 국제적 압력을 받아 정치범을 석방하게 된다. 2002년 민주야당의 총선승리로 24년에 걸친 모이의 독재가 종식되고 마타이는 국회의원으로, 환경부 차관으로 활동영역을 넓힌다.

최초의 중동부아프리카 여성박사, 최초의 여성교수, 여성학장이라는 이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케냐는 매우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마타이는 아프리카의 전통을 해치고 남성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남성들에게서 비난받았다. 남편은 너무 많이 배웠고 너무 많이 성공했고 너무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혼을 강요했다. 독재자로부터는 미친 여자, 마녀, 서구의 앞잡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마타이의 가장 큰 매력은 '행동'에 있다.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여성 지식인이었으나 말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왔다. 여성과 환경, 민주주의와 경제를 통합하여 보는 안목이 탁월하였고 원칙적이면서 편협하지 않은 그는 지금은 환경부차관으로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미래는 꿈꾸는 자에게 주어진다.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절망을 오히려 가능성을 위한 힘으로 전환시켜 낸 왕가리 마타이의 삶에 대한 낙천적 태도는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이미영 여성환경연대 사무국장

●그린벨트운동이란

77년 마타이가 자신의 뒷마당에 7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된 그린벨트운동은 인도의 칩코운동과 함께 3세계 여성환경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이자 공동체의 경제발전에 기반하여 환경복원을 이루어낸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인정받고 있다.

마타이는 자연과 공생하며 지속가능한 생존을 일구었던 전통적 삶의 방식에 천착하여 서구를 좇는 따라잡기식 경제개발이 아닌 아프리카식의 대안적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 속에 구상된 그린벨트운동으로 여성들은 땔감과 열매와 약재를 얻을 수 있었고 나무 한 그루당 3센트의 돈을 받아 자립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현재 그린벨트운동은 탄자니아, 우간다, 에티오피아, 짐바브웨 등의 국가로 펴져나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녹색희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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