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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다가 종국에는 자신의 관을 누일 단 한 평의 땅 밖에 소유하지 못하게 된 농부 '파홈'을 통해 부에 대한 인간 욕망의 덧없고 덧없음을 얘기한다.

그런데 빈곤, 특히 여성의 빈곤을 접하게 되다보면 톨스토이의 철학적 명상보다는, 기를 쓰고 언덕 꼭대기로 올려놓은 바위가 허망하게 다시 굴러 떨어지는 광경을 숨이 붙어 있는 한 빤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시시포스(Sisyphos)의 절망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하고, '형벌'이라고도 하지만…여성의 빈곤에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분명히 더 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보다 더 빈곤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구조의 함정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숟가락에 누이나 여동생보다 한 점 더 놓일 고기부터 시작해 건강 교육 등 기초생활에서부터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한수 위의 혜택을 받고 자란다. 성장해 사회구조 속으로 진입하게 되면 임금 승진부터 정규·비정규직 수치에 이르기까지 남성 우대(?)구조에 대한 열패감에 시달리고, 또 실제적으로 피해를 빤히 보며 생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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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월곡동 재개발 지역. 연탄수레를 앞에서 끄는 남편과 뒤에서 미는 아내의 힘겨운 모습에서 빈곤 대물림의 악순환을 끊을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기태 기자 leephoto@〉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근대 산업화 초기의 구닥다리 얘기를 하느냐고. 한 자녀 혹은 무자녀 초핵가족 시대에다 여성할당 우대정책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남아선호사상은 또 웬 말이냐고도 할 것이다. 일부는 옳은 지적이지만, 전체적으론 그른 지적이다. 빈곤이 얼마나 '여성'적 얼굴인지를 연구자들의 통계 수치로, 현장의 취재로 입증하고자 하는 이번 특집기획 '빈곤의 여성화를 막자'를 읽다보면 독자들은 이를 수긍할 것이다.

여성, 그것도 나이가 어리거나 또는 고령인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약자에게일수록 강하다'는 빈곤의 속성을 감안하면, 여성빈곤의 문제는 '심각하다'는 문어적 개념적 표현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장기불황과 중산층 몰락의 위기론 속에 여성들은 계층과 연령을 불문하고 상대적으로 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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