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수라’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는 소리의 영화이고 바람의 영화다.

영화는 새벽 어스름의 푸른 하늘과 붉은 달, 갯가의 새소리와 사람 발소리로 시작한다. 탁 트인 수라 갯벌에서 차가운 눈발을 맞고 서 있는 느낌이다. 자연으로 나아갔을 때 맞닥뜨리는 다양한 생물들, 게와 조개, 새와 고라니, 금개구리의 발랄한 생김새와 색감에 눈이 트인다.

온 감각이 열린 뒤에 맞이하는 진실은 마음 아프다. 이렇게 멋진 자연을 우리가 시멘트로 덮었다. 마지막 살아있는 공간 ‘수라’도 덮으려 한다. 조개가 목말라 죽어가고 새들의 삶터가 산산이 부서진 순간이 사무치게 고통스럽다.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연 덕분이다.

여성인 ‘나’의 이야기가 검은머리물떼새 어미의 이야기가 되었다.

감독은 8년간의 취재와 고생스러운 촬영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덕분에 이야기 또한 촘촘하다. 새만금갯벌 개발의 역사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20여 년 활동이 다각도로 담겨있다.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설득하는 힘이 있고 공감을 불러온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등 다수의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은 ‘나’를 넣고 싶지 않았다고 했지만 힘이 있는 글쓰기라는 걸 본능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군산으로 이사 온 뒤 낯설고 삭막한 도시에서 감독은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으로서 가족을 위해 보내는 시간은 늘었지만 나와 나의 일은 단절된 기분이었을 듯하다. 하지만 눈여겨보니 군산은 갯벌의 도시였고 새의 삶터고 자연의 친구들이 찾아오는 도시였다. 특히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을 만나고 오동필 단장의 활동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영화작업의 중요한 시작이 되었다.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새도 사람도 새끼 기르기가 쉽지 않다.

황윤 감독과 아들, 주인공인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과 아들 승준의 모습은 쇠제비갈매기나 검은머리물떼새의 알 낳고 새끼 돌보기를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게 돕는다. 새들이 먹이를 구해 새끼에게 먹이는 모습 뒤로 오동필 단장이 생계를 위해 굉음이 나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겹쳐지듯 나오니 동병상련의 마음을 불러낸다. 새들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조개들이 바닷물을 기다리다 목말라 죽어가는 광경에서 탄식이 쏟아지는 것은 이 같은 글과 구성의 힘이다.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 ‘수라’의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영화는 서식지보호운동과 생물다양성운동의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

나에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 내 친구들, 지역주민들, 지구 반대편의 마오리족까지! 내가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연결된다. 내가 사는 곳의 검은머리물떼새와 쇠제비갈매기, 갯벌과 바다, 지구와 달, 그 너머의 우주, 모든 자연이 촘촘하게 연결된다. 갯벌의 먹이사슬이, 강과 바다가 연결돼 있고 인간과 자연이 연결돼 있듯이 말이다.

영화 ‘수라’는 이제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태운동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수라’라는 깃발을 보여준 것이다. 산양이 사는 설악산과 고니를 위해 싸우는 낙동강하구, 공항이 세워질 제주도와 거제, 흑산도 들에서, 자기 곁의 생명을, 아름다움을 애써 지키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영화다. 감독이 군산의 자연에 눈을 뜨는 순간이 있듯이 영화를 보고 곁에 내 곁의 자연과 생명을 돌아보게 된 관객들이 있을 듯하다. 이제 막 눈을 뜬 시민들에게 영화 ‘수라’가 묻는다. 당신의 ‘수라’는 어디인가요?

‘새만금’이라는 지명에 대하여

장항에서 군산, 변산반도에까지 이르는 넓은 갯벌을 정부가 매립하고 개발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만금’이 나올 평야라는 뜻인데 농민들에게 나눠줄 땅으로 개간한다며 어민들의 바다를 빼앗아 방조제로 바닷물을 막고 매립했다. 현재 기업에게 헐값에 공장 부지로 팔고 있다.

수라갯벌은

새만금지역의 넓은 갯벌 가운데 수라마을 앞에 아직 매립하지 않아 생물들이 살고 있는 갯벌이다. 육상화가 진행되어 풀들이 가득한 초원이 됐지만 흰발농게와 칠면초가 살고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 수라는 비단처럼 예쁘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곳에 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2003년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꾸려진 모임이다. 시민, 활동가, 전문가가 함께하는 공동조사단으로 2006년, 방조제가 세워진 뒤에도 20여 년째 매달 첫째주 일요일 정기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물새와 저서생물, 문화 팀으로 나눠 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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