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다지 연예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 박신양의 역할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박신양'이라는 배우와 그가 연기하는 한기주라는 배역의 구분이 참 모호해지는 경험을 했다. 순간 순간 드러나는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는 그의 아픔과 따뜻함, 안타까움 등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너무나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야할까?

드라마 속 저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저 사람의 감정과 느낌, 혼란스러움과 기쁨을 온전하게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감칠맛 나는 대사를 통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의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을 통해서였다. 그 표정 하나가 열 마디의 대사보다 나를 가슴아프게 하고, 설레게 하고, 푸근하게 했다. 그러고 다시 남편을 보니 남편의 표정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앗! 저 사람에게 저런 표정이 있었나?'하는 생각에 또 한 번 놀란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물론 과장되게 멋진 표정을 짓는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속아 또는 그것에 빠져 연예인을, 드라마 주인공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주위사람들과 비교하고 '그럼 그렇지'하고 실망도 한다.

그러고 보면 그 드라마는 유난히 남자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스업한 장면이 많았던 것 같다. 그것을 통해 나는 그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었는데, '언제 내가 내 남편의, 내 딸의,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려고 한 것만큼 주위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의 표정에 관심 가지고 그 표정에서 뭔가를 읽으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머리와 손은 내 할 일을 하면서 입과 귀만 그들을 향해있지는 않았었나?

의사소통 교육을 하다보면 주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하느냐,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느냐, 거절이나 수락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때 사실 언어가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은 10%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모두들 놀란다. 만일 그 드라마를 라디오로 들었더라도 그 생생한 감정과 감동이 똑같이 전해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 문제로 고민과 질문을 한다. 이 말이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드라마를 보듯이 의사소통을 하라고. 드라마를 볼 때처럼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라고. 상대가 말을 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다양한 표정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지금부터라도 내 가족, 내 동료들의 표정을 클로스업해 보라고. 지금부터 상대의 얼굴에, 그의 표정에 두 눈을 고정하라고.

이진아 여성학자,

세종리더십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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