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튀르기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뒤 관저에서 시민들에게 연설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에르도안 튀르기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뒤 관저에서 시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트위터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는 1일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 결과를 1일 확정했다. 지난 20년간 튀르키예에서 지배적인 세력이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대통령 3선에 성공했음을 확인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아흐메트 예네르 최고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52.18%, 제1야당인 케말 킬리차로글루 대표가 47.82%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예네르 위원장은 "이런 결과에 따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대통령에 당선돼 그 결과를 관보에 게재했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85.72%였다.

이미 튀르키예의 최장수 지도자인 69세의 에르도안은 이제 2028년까지 통치할 수 있다.

미확인 보도에 따르면 그는 토요일에 취임선서를 할 예정이며, 그 후에 그의 새 내각의 구성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 없는 고물가, 5만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대지진에도 튀르키예 민심은 20년 지도자가 부르짖는 ‘오스만의 꿈’을 택했다. 에도르안은 5년 임기를 연장해 최장 30년 집권 꿈을 이어가게 됐다. ‘21세기 술탄(오스만 제국의 왕)’이라 불리는 그는 2003년부터 내각제 총리와 대통령직을 번갈아 가며 철권 통치를 하고 있다.

미국의 타임지는 지난 2020년 7월 에로도안을 다룬 기사에서 "에르도안은 오스만 제국을 부흥시킨 술탄이 되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복잡해진 바이든의 셈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백악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백악관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이 튀르키예에 F-16 전투기를 팔 것을 요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 먼저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나는 에르도안의 당선을 축하했다. 그는 여전히 F-16과 관련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스웨덴과 거래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에르도안의 연임으로 미국과 유럽, 나토의 ‘러시아에 대한 단일대오’에 빨간불이 켜졌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대러 제재 동참에 거부하고 러시아산 석유·가스를 사들이며 모호한 중재 노선을 취했다. “튀르키예가 러시아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EU 국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튀르키예는 미국으로부터 200억 달러 상당의 F-16를 비롯해 80개의 현대화 장비들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여러 차례 매각을 지지한다고 밝혔음에도 튀르키예의 나토 확대에 대한 거부감과 인권 문제, 시리아 정책 등에 대한 미 의회의 반대로 매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미 의회는 올해 초 튀르키예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승인한 뒤 F-16 전투기의  항공전자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포함한 2억5900만달러 규모의 장비 판매를 승인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 문제는 다시 ‘깜깜이’ 상황이 됐다. 나토 회원국들은 당초 7월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개최되는 정상회의에서 승인되길 기대했지만 스웨덴에 제동을 걸어온 에르도안이 연임하면서 낙관할 수 없게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르도안의 당선으로 인해 서구는 공포와 희망의 덫에 갇히게 됐다”면서 “그가 러시아로 더 밀착할 것인가에 대한 첫 번째 시험은 7월 나토 정상회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토가입은 모든 회원국이 승인해야 한다.

세계는 5개보다 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AP/뉴시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AP/뉴시스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에르도안의 최소 5년 임기 시작이 지역 안정과 세계 평화에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알자지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양자, 지역, 그리고 세계적인 긴급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자발적인 국가와도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뉴스위크는 에르도안의 승리는 튀르키예의 최대 교역국인 유럽연합(EU)과 평소와 다름없는 사업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그 관계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동지중해, 튀르키예-그리스, 튀르키예-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 문제를 놓고 계속 충돌할 것이다. 에드로안과 마크롱은 그리스, 키프로스 등의 문제를 놓고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왔다.

에르도안의 세계에 대한 평소 인식은 "세계는 5개보다 크다" 이다. 5개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을 뜻한다. 에르도안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분쟁에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에르도안은 2016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평화 유지와 평화 만들기 활동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엔으로부터 소외된 중동 국가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나토의 러시아 트로이목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모스크바에서 자신이 의장을 맡고 있는 헌법 개정 관련 실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실무회의는 이날 지난달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전면적인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들의 찬반을 묻는 투표를 오는 4월22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모스크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모스크바=AP/뉴시스]

미국의 뉴스위크는 에르도안의 승리는 튀르키예가 나토의 최대 안보 현안인 러시아와의 거래를 계속할 것임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용과 가스 대금 지불 연기를 계속해서 연장할 것이다. 튀르키예는 나토 내에서 일종의 트로이 목마가 됨으로써 보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는 러시아의 제재 회피 지원, 수백만 명의 러시아 관광객 유치, 원자력 관련 문제 협력, 스웨덴의 나토 가입 저지 등이 포함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와 키프러스 문제를 놓고 반서방 진영의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의 대선 결선투표 열흘 앞두고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가능하게 한 '흑해곡물협정'을 2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사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TV 연설을 통해 공개했다. 이는 결선을 앞두고 치적이 필요한 에르도안을 돕기 위한 러시아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뉴스위크는 반면 미국의 가장 전략적인 동맹국인 튀르키예의 에드로안의 재집권은 튀르키예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점점 더 계산적이고 혼란스런 관계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설리만 소일루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반미 발언을 해왔다. 바이든은 2020년 대선 기간 에르도안을 “독재자”라고 부른적이 있다.

에도르안 앞에 놓인 과제...물가 폭등, 금융 위기

[아다나=AP/뉴시스] 7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 지진 피해 현장에서 구조대가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아다나=AP/뉴시스] 7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 지진 피해 현장에서 구조대가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로 예상보다 높았다. 이는 경기부양과 초저금리에 힘입은 것이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대지진 이후 9천억 달러에 이르는 부양책이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3기의 튀르키예 경제전망은 밝지 않다.

에르도안이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직후 튀르키예의 리라화 환율은 1달러에 20.7달러로 3.5% 이상 폭락했다. 리라화의 가치는 지난 5년간 80% 하락했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중 5% 이상을 성장했던 사우아라비아와 인도에 이어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였다. 에르도안 행정부는 최저임금과 연금 인상뿐만 아니라 저금리 대출과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공공요금을 통한 확장정책을 폈다. 

그 결과 지난해 물가는 폭등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해 튀르키예 물가는 85% 폭등했으며 지난 4월에도 44% 뛰었다. 이는 G-20 국가 가운데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것이다.

물가 폭등과 리라화 가치 하락으로 디폴트(국가 채무불이행) 우려는 치솟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이 치솟아도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등 정통 경제 정책과 반대되는 길을 걸어왔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기존의 경제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향후 리라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튀르키예는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와 걸프 지역 국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왔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는 터키 중앙은행에 수십억 달러를 예치하거나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설립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의 첫 원자력 발전소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천연 가스 요금의 지불을 연기했다.

유라시아 그룹의 유럽 이사인 엠레 페커는  "경제는 러시아로부터의 자금 조달과 걸프 지역으로부터의 투자에 의존해 왔으며 에르도안이 계속해서 집중할 분야"라고 말했다.

그는 여름 관광수입이 유입되고 리라화 약세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내 에너지 수요가 낮아져 향후 3~4개월은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 정책을 바꾸라는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페커는 "현재의 경제 역학은 튀르키예의 요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는 외부 지불을 관리하기 위해 더 많은 외국인 유입이 필요할 것이고 마이너스 금리를 감안할 때, 경제 안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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