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시집가면 시댁귀신'굴레에 갈등·투쟁·타협 악순환

@b2-3.jpg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남편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잘 하면서 내 부모한테는 왜 그렇게 못 하느냐고 그러죠”

2남 3녀 집안의 맏며느리인 최미선(36·가명)씨는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될 수 있는 한 남편 쪽 가족과의 접촉을 피하고 싶다. 주변의 눈총이 따갑지만 3년간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가장 노릇을 했던 것이 최씨에겐 그나마 방패막이다. 최씨는 “맏며느리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남으로 자란 남편은 남편대로 요구하는 기대치가 있어 다투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평균 8명 안팎의 시동생과 수십 명 가량의 시댁 식구들을 묵묵히 뒷바라지 해 오던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맏며느리를 기억하는가. 전통 사회에서 이들은 집안의 가장에게 부여된 권력에 상응하는 발언권과 위치를 가지고, 그에 못지 않은 보이지 않는 헌신과 노동, 역할을 요구받아 왔다.

60, 70년대 한국 사회가 경제 부흥에 한껏 들떠있던 때 한국의 가족들은 한정된 자원을 첫째에게 집중 투자함으로써 최대의 효과를 보고자 했다. 교육은 물론 결혼까지 이어지는 재정적·감정적인 지원, 가족의 신뢰 등은 한국 근대산업화를 가능케 하는 '가부장권'을 굳건히 지탱,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되었을 정도다. 반면 근대 가족 안에서 맏며느리 혹은 장녀는 장남이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울 만한 사회적인 위치를 가질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보조해야 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이른바 '맏며느리 콤플렉스''장녀 콤플렉스'다. 이들은 리더에게 요구되는 책임감 못지 않게 '부덕(婦德)' '헌신성' 등을 체득하도록 요구받는다.

“맏이라는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남편이나 시동생들이나 똑같이 부모한테 받았는데 옛날처럼 그렇게 맏이가 꼭 부모를 모셔야 된다는 법이 있나요”

수유리에 사는 신미경(42·가명)씨는 직장 때문에 혼자 된 시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적잖은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됐고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입장을 수긍해 주고 있다.

신씨처럼 부모 봉양을 더 이상 맏이의 책무로 여기지 않는 첫째들이 늘고 있다. 3대 이상의 대가족을 부양하는 맏며느리의 모습은 이제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족관계의 고리는 여전히 이어져 이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추세다. 함께 살지 않고 얼굴을 맞대지 않는다고 해도 혈연, 장자 중심의 가족문화는 여전히 '여자는 결혼하면 남자 집 귀신'이란 굴레를 이들에게 씌우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한국 가족이 구조적으로는 소가족화하고 있으나 가족 의식이나 가족 관계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계 혈통 중심의 대가족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의 이름으로'(또하나의문화)의 저자인 이화여대 여성학과 이재경 교수는 “현대 한국 가족에서 어머니 정체성은 여성들의 다중적 정체성 중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만,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 가족에 속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어머니 정체성은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며느리 정체성과 궁극적으로 화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가족 구조 하에서 여성들은 '며느리'라는 위치에 자의반 타의반 구속되지 않을 수 없다. '백년 손님'인 사위와 달리 남편 집안의 일원이 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투쟁과 타협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지난한 행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임인숙 기자isim123@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