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계 숙원 ‘간호법’ 어디로 가나]
윤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
간호사들 반발 ‘준법투쟁’ 예고
“대통령에 정치적 책임 묻겠다”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2023년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인 간호법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간협) 회장은 윤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을 두고 이같이 규정했다. 간호계 오랜 숙원인 간호법이 정쟁에 밀려 폐기될 처지에 놓이자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 모인 간호사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분노와 배신감에 오열하다 실신한 간호사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뒤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2021년 3월 국민의힘 최연숙·서정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을 묶은 대안이다. 당시 코로나19로 간호사의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공감대가 커진 상황이었다. 간호인력의 자격과 업무 범위, 책무,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의 이 법안은 2년간 4차례 법안심사 등의 국회법 절차를 통해 심의·의결됐다. 지난 2월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어 간호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하고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직역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그런데 야당과 대통령이 대화나 타협 없이 입법권과 거부권을 쓰면서도 정작 간호법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여야는 정치적 타협과 대화 대신, 각자 편가르기에 바빴다.

법안심사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의사, 간호조무사 등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조정에는 손을 놓고 갈등을 키웠다.

대선 과정에선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도 간호법 제정에 긍정적이었다. 지난해 1월 간협 사무실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간호법이 숙원 사업인데 말씀 부탁드린다’는 사회자의 요청에 “법안이 국회로 오게 되면 정말 공정과 상식에 합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저희 의원님들께 잘 부탁드리겠다”고 답했다. 원희룡 당시 선대본부 정책본부장도 지난해 1월 간호협회와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것은 후보가 직접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시 윤 후보가 간호협회를 방문했을 때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 정도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안다”며 ‘공약’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간협이 ‘정치적 심판’을 예고하면서 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간협은 간호법 재추진과 함께 정부 여당에 투표로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기획단을 기획해 간호법을 파괴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단죄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영경(오른쪽 세번째) 대한간호협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 인근에서 정부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1차 대응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영경(오른쪽 세번째) 대한간호협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관 인근에서 정부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관련 1차 대응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본격적인 단체행동도 이어지고 있다. 간협은 불법진료에 대한 의사의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의사의 업무 지시를 거부하고 특히 임상병리사 등 다른 보건 의료직능의 업무에 대한 의사의 지시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리처방과 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파와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비위관(L-tube)과 기관절개관(T-tube) 교환, 기관 삽관, 봉합, 수술 수가 입력 등이 입력 등에 관한 의사의 불법 지시를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간호사, 이른바 PA(진료보조인력) 간호사는 없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이미 약 1만명의 PA 간호사가 인력 부족 등으로 불법 의료행위를 관행적으로 해왔다.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도 벌인다. 간협이 간호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4%가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불법 의료행위 지시 거부, 면허증 반납 등으로 의료공백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대해 국회가 재의결을 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돼야 한다. 원내 115석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출석해 모두 반대표를 던지게 되면 야당의 힘만으로 통과시킬 수 없다. 부결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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