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뮤지엄, 8월6일까지
프랑스 사진작가·거리예술가
JR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여성은 영웅이다’ 등 대표작 모아

JR, 여성은 영웅이다(Women Are Heroes),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모로다 프로비덴시아에서 작업(Action in Favela Morro da Providencia), 낮의 슬럼가(Favela by day), Rio de Janeiro, Color lithograph, 2008. ⓒJR-ART.NET
JR, 여성은 영웅이다(Women Are Heroes),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모로다 프로비덴시아에서 작업(Action in Favela Morro da Providencia), 낮의 슬럼가(Favela by day), Rio de Janeiro, Color lithograph, 2008. ⓒJR-ART.NET

거대한 여성들의 눈들이 도시를 내려다본다. 국가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여성, 빈민가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과 모욕을 받아야 했던 여성들이다. 눈이나 얼굴 사진을 확대해 벽이나 건물 지붕에 부착했다. 폭력과 야만에 지지 않고 버텨온 이들의 눈빛이 강렬하다.

2008년~2010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펼쳐진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다. 프랑스 출신 세계적 사진작가이자 거리 예술가, 제이알(JR·41)의 작품이다. 

여성은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존재지만, 전쟁·범죄·성폭력과 정치적·종교적 광신주의에 가장 먼저 희생”된다. “때로는 여성이 처한 삶의 조건이 그 나라의 상태를 보여준다“. JR이 이 프로젝트를 ‘여성’에 헌정한 이유다. 가련하고 무력한 ‘피해자’가 아닌,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권리를 되찾으려는 여성들의 강인함을 드러내 호평받았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JR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 (JR : CHRONICLES)’ 전시 중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 일부. ⓒ사진 이종훈/롯데뮤지엄 제공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JR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 (JR : CHRONICLES)’ 전시 중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 일부. ⓒ사진 이종훈/롯데뮤지엄 제공

JR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했다. ‘제이알: 크로니클스 (JR : CHRONICLES)’. 작가의 최근 20여 년 행보를 보여주는 작품 140여 점을 모았다. 2019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을 시작으로 독일 뮌헨 쿤스트할레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다.

JR은 1983년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대였던 2001년부터 거리 그래피티 작업을 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주운 카메라로 동료들의 활동을 기록하기 시작하며 거리 예술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2011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대담한 소망을 가진 창의적 리더에게 수여하는 테드(TED)상을 수상했다. 2016년 루브르 미술관의 의뢰로 루브르 피라미드 관련 대형 작업을 선보였다. 누벨바그 거장이자 페미니스트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공동 제작한 다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로 칸영화제 골든아이를 수상했다.

도시는 그의 캔버스다. 대형 초상사진을 공공장소에 부착하는 프로젝트가 그의 특기다. 그가 다녀가면 평범한 지붕과 계단은 다양한 인물의 초상이 된다. 도시의 산 역사이지만 도시로부터 소외된 노인들의 얼굴이 된다(‘도시의 주름’ 프로젝트). 미국인들의 얼굴을 통해 미국 총기 문화 산업을 조망하는 프로젝트로도 주목받았다(‘총기 연대기: 미국의 이야기’). 사진을 매개로 동시대의 주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화를 촉발한다.

JR의 초상 사진(2019). ⓒJR-ART.NET
JR의 초상 사진(2019). ⓒJR-ART.NET
JR이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2010) 포스터.
JR이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2010) 포스터.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는 특히 인상적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모로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encia)에서 군인의 불심검문을 거부하던 무고한 청년 세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이를 계기로 소요 사태가 일기도 했다. JR은 이 소식을 접하고 2008년 사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현지 주민들과 만나 한 달간 협업한 끝에 여성 주민들의 눈과 얼굴을 촬영해 크게 확대한 사진들을 빈민가의 언덕을 따라 늘어선 건물 40채의 외벽에 부착했다. 거대한 여성들의 얼굴과 눈들이 리우데자네이루 도심을 내려다보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8년~2010년 캄보디아, 인도, 케냐,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지로 뻗어나갔다. JR은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여성들이 각자가 겪은 가정폭력, 강간, 아동 살인 등의 고통을 숨김 없이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의 존엄을 돌아보게 하는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JR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 (JR : CHRONICLES)’ 전시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소를 기원하며 제작한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젝트. ⓒ사진 이종훈/롯데뮤지엄 제공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JR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 (JR : CHRONICLES)’ 전시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소를 기원하며 제작한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젝트. ⓒ사진 이종훈/롯데뮤지엄 제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기원하는 작업도 있다.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젝트는 다양한 직종의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대형 초상을 국경 지역 곳곳에 부착한 전시다. 사람들은 각각 유쾌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만 봐서는 출신지를 알 수 없다. 그런 건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인간으로의 유대감과 함께 장벽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JR은 사진 속 모델들에게 이-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두 국가 해결안(Two-state solution)’과 평화 지지 서한에 서명을 부탁하기도 했다.

JR의 질문은 단순하다.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적어도 작가가 ‘예술은 힘이 세다’고 확신하게 된 순간은 많았다. 2019년 JR은 미국에서 가장 폭력적인 재소자들이 수감된 교도소 중 하나인 미 캘리포니아 테하차피 교도소 재소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재소자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사연을 녹음했다. 교도관, 재소자들과 함께 교도소 운동장에 사진 338장을 부착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처음 작업에 참여한 재소자의 3분의 1가량이 보안 등급이 낮은 교도소로 이감됐다. 3년 뒤에는 모든 참여 재소자가 보안 등급이 낮은 교도소로 옮겨졌고, 전체의 3분의 1이 출소했다. 재소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들을 보는 교도소 내 인식이 달라지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JR, 테하차피(Tehachapi), 2019 ⓒJR-ART.NET
JR, 테하차피(Tehachapi), 2019 ⓒJR-ART.NET
JR, 도시의 주름(The Wrinkles of the City), 라 하바나(La Havana), 라파엘 로렌조와 오브둘리아 만자노(Rafael Lorenzo y Obdulia Manzano), (artwork by JR, project between JR _ José Parlá), 나무에 잉크, 쿠바, 2017 ⓒJR-ART.NET
JR, 도시의 주름(The Wrinkles of the City), 라 하바나(La Havana), 라파엘 로렌조와 오브둘리아 만자노(Rafael Lorenzo y Obdulia Manzano), (artwork by JR, project between JR _ José Parlá), 나무에 잉크, 쿠바, 2017 ⓒJR-ART.NET
JR, 클리시-몽페르메유 연대기(The Chronicles of Clichy-Montfermeil), Duratrans prints, plexiglass sheets, 2017. ⓒJR-ART.NET
JR, 클리시-몽페르메유 연대기(The Chronicles of Clichy-Montfermeil), Duratrans prints, plexiglass sheets, 2017. ⓒJR-ART.NET
JR,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뉴욕 타임스퀘어, Installation image, Wheat-pasted posters on buildings, 2013. ⓒJR-ART.NET
JR,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뉴욕 타임스퀘어, Installation image, Wheat-pasted posters on buildings, 2013. ⓒJR-ART.NET

JR은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담론을 만들 기회를 제공한다. 2011년 시작한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엔 전 세계 149개국 약 50만명이 참여했다. JR의 웹사이트를 통해 사진을 보내면, JR 스튜디오가 포스터 크기로 출력해 보내준다. 직접 도시의 원하는 곳에 사진을 부착하면 된다. 미 볼티모어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벨기에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주민들이 처한 곤경, UN이 연루된 아이티 콜레라 사태 등이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다양한 시민들을 사진 한 장에 콜라주한 ‘연대기’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2017년 클리시-몽페르메유에서부터 2018년 미 샌프란시스코, 2019년 뉴욕까지 이어진다. 또 이번 전시에선 사진과 영상, 아나모포시스(왜상, anamorphosis), 휘트 페이스트 업(wheat paste-up, 콜라주처럼 이미지를 잘라 붙인 작품) 등 140여 점을 볼 수 있다. 롯데뮤지엄 안에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나모포시스 작품도 있다. JR이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나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 예술을 선보이고 싶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엄청난 프로젝트를 벌이고, 그들이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다.” (JR) 전시는 오는 8월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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