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아이합(IHOP)이 생긴 뒤 토요일 아침마다 눈뜨면 “아이합 가자”로 시작한다. 가야할 이유 열 가지를 내가 제시하면 아내는 가지말아야 할 이유 열 가지를 댄다. 나도 포기할 수 없고 아내도 포기하지 않는다. ⓒ정재욱
동네에 아이합(IHOP)이 생긴 뒤 토요일 아침마다 눈뜨면 “아이합 가자”로 시작한다. 가야할 이유 열 가지를 내가 제시하면 아내는 가지말아야 할 이유 열 가지를 댄다. 나도 포기할 수 없고 아내도 포기하지 않는다. ⓒ정재욱

첫 직장 들어가던 해 종로2가에 켄터키 치킨이 들어왔다. 대단했다.
아이 가졌을 때 역시 종로2가에 맥도날드가 들어왔다. 대단했다 2.
그래서 미국에 가면 대단한 것들만 먹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컷 먹기는 했다. 대단은커녕 좀 서글펐다. 어쨌든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 KFC 팝아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패스트 푸드를 두루 섭렵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커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을 떠날 즈음엔 우리도 어지간한 체인식당들을 졸업해 있었다. 미련이 없었는데…. 

동네에 아이합(IHOP)이 들어왔다. 귀에 익은 체인점이 코앞에 있으니 한번쯤은 먹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의무감이 생겼다. 쉬는 날 아침에 별뜻없이 아이합 한번 가보자고 말꺼냈다가 일언지하에 짤렸다. 팬케익이 팬케익이지 뭘 나가서 사먹냐. 그 소리만 했어도 하긴 그렇지 하고 수긍할 수 있었는데 뒤에 얹는 잔소리가 내 속을 긁었다. 맨날 돈 쓸 생각이나 하고 말야.

내가 뭘 그렇게 썼다고… 뒷끝이 일주일을 가더라. 돌아온 토요일에 또 말꺼내봤다. 나도 아이합 한번 가고 싶은데. 아, 내가 만들어 줄께. 씻고 나가는 것도 귀찮잖아. 아내가 만들어 준 엄마표 팬케익을 먹다보니 아이합의 오리지널 팬케익은 어떤 맛일까 더욱 궁금해졌다. 어때? 내게 더 맛있지? 아내의 채근에 평소 같았으면 응, 그랬을텐데 그만 논리적으로 답이 나왔다. 아이합 걸 먹어봤어야 알지. 전선이 형성됐다.

금단의 음식이 된 아이합에 대한 환상은 더 커져만 갔다. TV 광고의 그곳은 천국이다. ‘International House of Pancakes’, 이름도 국제적인 집이 아니더냐.

날 쉽게 봤지? 내가 초중고 12년을 개근한 인간이다. 토요일 아침마다 눈뜨면 “아이합 가자”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일부러 시비를 거느냐는 식의 험한 반응도 있었지만 한주 한주 지나면서 “가자!”에 “노!”가 반복적인 아침인사가 됐다. 가야할 이유 열 가지를 내가 제시하면 아내는 가지말아야 할 이유 열 가지를 댄다. 나도 포기할 수 없고 아내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균형이 깨질 뻔 했다. 처형이 잠시 우리집에 머물던 때였다. 둘의 공방전을 듣다 못한 처형이 내편을 들고 나왔다. “야, 정 서방이 저렇게 먹고 싶다는데 그냥 한번 가주지 그러냐. 너도 정말 어지간하다.” (나도?)

전력이 2대1이 되니 마침내 대망의 아이합 정벌에 나설 수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 11시 아이합 주차장에 차 세울 데가 없다. 줄서서 기다렸다가 먹자는 투정까지 부릴 수는 없어 한인타운의 순대집으로 회군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맛있으면 저렇게 사람들이 많겠느냐는 내 말에 예상 답변이 나오더군. 저렇게 쓸데없이 나가서들 사먹으니까 미국 사람들이 돈 한푼 못 모으지.

그깟 아이합 얼마나 한다고 혼자 가서 먹고 오면 되지. 남의 집안사정 제대로 모르시면서 그렇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마세요. 5년 넘게 판이 여기까지 벌어진 마당에 이제 와서 나 혼자 홀라당 먹고온다는 건 배신이다. 반역이다. 들키면 뒷감당 못한다. 

여하튼 돌아오는 토요일에도 가열차게 나의 투쟁은 계속될 것인데, 마음 한켠으론 또 그렇다. 아내가 오케이 하고 정말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떡하지, 천국이 좋다고 해서 빨리 가고픈 건 아니잖아.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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