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곡천 힐링텃밭 ⓒ강남구청
사진은 세곡천 힐링텃밭 모습 ⓒ강남구

텃밭과 농막이 경치 좋은 청정지역에 있다 보니 이따금 친구들이 놀러 온다. “언제 갈까요? 두릅 올라올 때 아닙니까?” “고기 몇 근 끊어 갈게, 바비큐나 해 먹읍시다.” 계절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도로 정체가 다반사인 가평 길을 장거리 운전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 손님들 오신다면서? 어떻게 대접할 건데요?”

“응, 그중 한 명이 내 감자탕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냉이 무치고 밑반찬 좀 내놓으면 될 거야. 감자탕이라 밑반찬이 많이는 필요 없어요.”

감자탕은 내 시그너쳐 요리다. 가난한 시절, 돼지 등뼈는 헐값으로 보신이 가능한 최고의 식자재였다. 그 이후로도 가족들이 틈틈이 감자탕 요리를 주문했기에 지금껏 100번 이상은 만들었음 직하다. 손님들이 오기 하루 전날, 난 동네 슈퍼에 나가 등뼈 4kg과 얼갈이배추 1단을 사 왔다.

4월은 이곳도 바쁜 시즌이다. 쌈 채소, 대파, 딸기같이 조금 이른 작물들을 심어야 하고, 고추, 호박, 참외, 토마토 등등, 5월 초에 시작할 본격 농사를 위해 퇴비를 하고 이랑을 만들어 멀칭하고, 사과, 배꽃이 피면 솎아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연이 공짜로 내어 주는 나물이 지천이다. 이를 채취해 데쳐 냉동하거나 묵나물을 만들어 오래오래 맛과 향을 즐기고 싶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을 빼앗기면 1년 내내 아쉬워하고 만다.

그래도 손님들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는 이유는, 다들 고마운 인연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도 이따금 이런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 텃밭을 만들고 농막을 지은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머리 쓰는 일을 하다 보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몸을 쓰며 쉼표를 하나쯤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망가지지 않는다. 어차피 농사는 하늘이, 시간이 허락한 만큼만 얻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맘때의 농막은 야외 활동에도 최적이다. 다음 날 농막에 오니 조금 쌀쌀하기는 해도 야외 식사는 충분히 가능할 법했다. 아내와 나는 데크 테이블을 밖으로 끌어내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감자탕을 다시 끓이고, 쑥과 눈개승마를 채취해 기름에 튀기거나 데쳐놓고, 쌈 채소로는 명이나물을 준비했다. 몇 년 전 100수씩 심어두었는데 이맘때 톡톡히 제 몫들을 한다. 손님들도 다행히 감자탕도 반찬도 맛있다며 좋아해 주었다.

식사 후에는 1시간 정도 주변 산책을 했다. 어쩌면 손님맞이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리라. 서울 사람들에게 산들 나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얘가 곰보배추예요. 나물로도 약으로도 인기가 많죠. 오, 화살나무, 고추나무에도 새순이 올랐네. 화살나무 새순은 홑잎나물이라 해서 서울에서도 인기가 많아요. 이따 돌아가기 전에 섬오갈피 순이랑 전호랑 더해서 실컷 따 가요.” 계곡엔 물이 많고 돌단풍이 절정이다. 뒷산에도 진달래, 산벚나무, 산복사나무 꽃들이 화려하다.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는 P가 그런다.

“이런 삶을 즐기는 조 샘의 여유가 부러워요.”

“세컨하우스라도 하나 가까운 곳에 마련하지 그래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아냐, 아냐, 바보는 별장을 짓고 똑똑한 사람은 별장 있는 친구를 만든다고 하잖아. 그냥 이런 곳은 놀러 오는 걸로 할래요.”

어쩐지 나만 무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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